제목: 그리스인 조르바
글: 니코스 카잔차키스
번역: 김욱동
독서기간: 2024.07.21 ~ 2024.08.01
민서, 명서야~~ 오랫동안 듣기만 했던 유명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시작했어.
박경철 시골의사가 쓴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자신이 대학생일 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흠뻑 빠져들었다고 했던 대목에서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어. 발음이 어려워 그 후로 몇 번의 되풀임 끝에 이름을 알게 되었지.
그가 말했듯이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나는 그만 죽을 것 같다"는 문장은 그를 세계의 여러나라로 이끌었어.
여행을 하면 견문을 넓히고 그의 삶 속에서 이 소설이 나온 것 일거야.
그는 무엇을 보고자 그렇게 수많은 나라들을 방랑했을까?
이 책의 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아빠는 바로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을까 싶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 말이야.
화자는 어느 항구 근처 카페에서 사랑했던 친구와 이별하는 쓰디쓴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괴로워하고 있었어.
그때 직설적인 화법으로 반백의 머리칼을 가진 조르바가 자신을 고용해 달라고 요청하지.
갑작스러운 요청이지만 화자는 조르바가 마음에 들어 크레타 섬의 광상 감독관으로 그를 데려가기로 해.
조르바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 보였어.
일반적인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어. 그는 도자기를 구울 때 검지가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지자 도끼로 검지의 중간을 잘라 버렸어. 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다는 거야. 비록 자신의 목을 해칠지라도...
화자에게 일에 관해서는 자신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려도 되지만 산투리라는 악기 연주는 절대적으로 명령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어. 그래, 그는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훑고 있는 거였어.
세상 만물은 하나같이 숨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며 동물이며 나무며 별이며 모든 것이 마치 상형 문자로 쓴 글과 같다. 보라보! 그리고 화 있을진저! 그 의미를 해독하고 그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자들에게. 누구든 그것들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사람이며 동물이며 나무며 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너무 때가 늦어서야 비로소 그 숨은 의미에 다가서게 된다.
사물이며 사람이며 시야에 들어 온 순간 숨은 의미를 아는 사람은 세상사를 깨우친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다만, 일반 사람들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의미를 되새기곤 한단다.
화자는 인생 경험이 많지 않아 붓다를 공부하며 책과 씨름하고 관념에 빠져 있었지만 온 몸으로 깨우친 철저한 철학을 두른 조르바를 보며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어.
나는 옅은 햇살 속에서 파이프의 연기가 굽이굽이 피어올라 오묘한 푸른 연기로 신명 나게 변하다가 결국은 공기 중에 서서히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복잡해져 갔다. - 연기와 함께 노닐다가 사라지고, 새로운 연기의 소용돌이와 함께 피어오르다가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성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세계의 생성과 절정과 소멸을 확실하게 피부로 느끼면서 경험했다. 또다시 붓다에 몰두했지만 이번에는 지성의 무분별한 말이라든가 경솔한 줄타기 따위는 없었다. 이 담배 연기는 붓다의 가르침의 정수였다. 속절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모양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푸른색 열반에 이르러 차분하고 조용하고 행복하게 끝나는 삶과 같았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깨달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확신을 느꼈다는 점만은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래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공감한단다.
우리 인생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행복도 있지만 그외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행복.
그리고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행복. 그립기만 하구나!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순간이 다 지나가 버린 뒤에야 비로소 뒤돌아보며 때로는 갑자기, 때로는 흠칫 놀라며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그러나 이곳 크레타섬 해변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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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말없이 난로에 둘러앉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행복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 말하자면 포도주 한 잔, 밤 한 톨, 별거 아닌 난롯불, 으르렁거리는 바다 소리, 그런 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것이 행복이로구나 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만 있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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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무런 야망도 없으면서 모든 야망을 품은 듯 끈질기게 일하는 것.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되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나하게 먹고 마시는 것. 그러고 난 뒤 모든 유혹에서 벗어나 혼자서 머리 위에는 별들을, 왼쪽에는 육지를, 오른쪽에는 바다를 소유하는 것. 그리고 갑자기 삶이 마음 속에서 기적을 이뤄 냈다는 사실, 그래서 삶이 동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화자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는 캅카스 지역에서 그리스인 동포 50만을 위해 이들을 그리스로 데리고 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어. 그는 애국자였지. 그러나 조르바의 의식은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
그리스인인지 러시아인인지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시선.
이런 시선이 범세계적인 인류애가 아닐까. 조르바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이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조르바는 산에서 목재를 운반하는 케이블 사업을 위해 이라클리오로 떠났어. 사흘 안에 온다던 조르바는 닷새가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그저 편지 한 통이 도착했지. 이 편지는 화자의 사랑하는 친구가 보낸 편지와는 완전히 다른 인생관으로 화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어.
조르바의 편지를 받은 화자는 그야말로 인생을 달관한 그의 편지에 그가 그리워졌어.
이라클리오에서도 어린 여자를 꼬셔 더욱 젊어지고자 했던 조르바는 마치 불멸의 인간처럼 행동했어.
마치 온 인생의 철학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
젊은 과부에 대한 상사병으로 파블리스가 바다에 익사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은 과부를 악마의 상징으로 삼았어.
하지만 화자는 과부의 잘못이 무엇인지 몰랐어.
과부로부터 호의를 얻었지만 화자는 자신 내면의 악마를 물리쳤어.
내 가슴은 또다시 계절의 규칙적인 순환으로 혼돈에 휩싸였다. 지구의 회전하는 바퀴, 태양에 따라 차례로 바뀌는 세상의 네 얼굴, 그리고 세월의 흐름과 그것과 함께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 다시 한번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던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사람이란 저마다 유일무이하고, 내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현세를 한껏 즐겨야 하고, 세월이란 화살처럼 속절없이 지나가며, 제2의 기회 같은 건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드디어 조르바가 돌아오자 화자는 세상의 신이 내려온 것처럼 반가웠어.
조르바는 오직 책으로만 세상을 배워왔던 그에게 온몸으로 세상에 대한 지혜와 철학을 알려주고 있었던 거야.
그의 인류애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야.
그러니 그에게는 애국심은 진작에 인류애가 솓아나기 전에 이미 사라져 버린 거야.
부활절에 양고기를 먹고 조르바는 양고기한테 미안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춤이든 예술 작업이든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고 했어. 화자는 혼자 남겨졌지만 조르바의 이 말에 몸이 반응하며 과수원 과부에게 몸을 던졌어.
그리고 그동안 책만 읽으며 중요시 여겼던 영혼이외에도 육체 또한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됐지.
아빠는 영혼과 육체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독서도 열심히 하지만 운동과 식습관도 중요하지.
과수원 과부가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하고 마담 오르탕스마저 병으로 저세상으로 떠나가자 조르바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분노를 불러일으켰어.
"보스 양반, 이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도대체 누가 창조했소? 누가 창조했건 왜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찼다. "
...... 왜 우리는 죽는 걸까요?"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연에 긍정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것을 자유의지의 행위로 바꾸어 놓는 것이 어쩌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블 사업이 쫄딱 망하자, 오히려 화자는 세상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꼈어. 새로운 환희가 자신의 영혼을 감싸줌을 느낀 거야. 아빠도 이 느낌을 약간은 알 것 같아. 외부적 파괴로 인해 괴로움이 오히려 지독한 걱정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말이야.
다른 이들은 온갖 복잡함에 감히 대항하며 머리를 싸매서 풀어내는 지혜를 조르바는 가장 단순하고 빠른 지름길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 화자는 이런 이유로 조르바를 경외하며 자신 또한 그러리라는 막연한 해방감을 맛본 터였어.
하지만 조르바는 진지하게 이야기해. 화자는 절대 자신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종이쪼가리에 포위당한 사람은 절대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내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오직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조르바의 방식을 아빠 또한 감히 저지르지 못한단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희열감을 느꼈는지도 몰라.
그이 말은 허리와 내장에서 나와 아직도 인간의 온기를 담고 있었다. 한편 내 말은 한낱 종이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둘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지.
서로 헤어지기 싫어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뜨거운 작별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화자는 크레타 섬을 떠나게 돼.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 스타브리다키스도 사망하지.
오 년이 지난 뒤 그는 조르바가 보낸 엽서를 통해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려볼 수 있었어.
여전히 그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어. 조르바 답게 말이야.
그렇게 가끔 엽서를 보내온 조르바는 어느 날 화자에게 "아주 멋진 녹암을 찾았음. 즉시 오기 바람. 조르바."란 전보를 보내왔어. 역시 화자는 행동할 용기가 없었어.
그러던 어느날 조르바의 부음 소식을 편지로 받았어.
죽기 전 그는 화자에게 전할 말을 남기고 산투리도 전해달라고 했어.
화자가 관념에서 행동으로의 실존주의 택하며 행복을 찾았다면 조르바 역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끝까지 잊지 않았어.
이 이야기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 실제로 조르바란 노동자를 부렸다고 하는구나.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철저히 실존적 삶과 행복을 추구한 작가는 세상에 대한 중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무엇을 더 바랐을까...
아빠는 벌써부터 조르바의 그 말투며 행동, 사고방식까지 그리워지는구나. 화자처럼 용기는 없지만...
2024.08.01.목.21.03.... 민서는 자고 있고 명서는 처음으로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했다며... 그리고 엄청 먹어대고 있는....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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