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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사피엔스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4. 8. 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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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피엔스

글: 유발 하라리

번역: 조현욱

독서기간: 2024.08.05 ~ 2024.08.12

 

 

민서, 명서야~~ 오늘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

사피엔스는 어떻게 혁명을 일으키며 신에게까지 도전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런 발전이 과연 사피엔스라는 종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제1부 인지혁명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인간종은 사피엔스만이 아니었어.

흔히 우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진화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한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동시대에 여러 인간종이 살고 있었어.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한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등의 타 인간종이 자연스럽게 멸종했든, 호모 사피엔스의 학살에 멸종을 했든 결국 현재의 인간종만이 살아남았어.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타 인간종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특별한 차이점은 언어를 통한 정보 교환이 있고 또 일정 무리의 한계를 벗어나게 만든 가상의 실재가 있어.

가상의 실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재하지 않는 관념이나 이념, 신화 등을 집단적으로 믿으며 서로를 신뢰하며 동질감을 느끼는 거야.

만일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할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전에 다른 책에서도 읽었지만 수렵채집인들은 농경인들보다 영양학적으로 골고루 음식을 섭취하여 체격과 건강이 더 좋았어. 이에 행복감마저 높을 가능성이 컸어.

왜 인간은 농업으로 이행했을까? 이는 권력집단과 연계성이 클 듯하구나.

 

지금까지 발굴된 선사 시대의 유물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아.

그러니 일반적 관점으로 수렵채집인들을 바라보면 안 돼. 너무나 다양한 문화와 언어, 규범 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폭력적일 수도 평화를 사랑할 수도 있단다.

 

가장 아쉬운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진출한 지역의 많은 동, 식물들의 멸종되었다는 거야.

이들은 동, 식물들이 자동자판기처럼 계속 자신들에게 먹이가 되어 줄 거라 생각했겠지만 결국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고 말았어.

 

제2부 농업혁명

인간이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9,000년경이었어.

많은 학자들이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했지만 이는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를 끌어야 하는 지옥을 만들어 냈어.

수렵채집인들은 다양한 동, 식물을 음식으로 섭취하여 영양 상태가 좋았지만 농업인들은 밀과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미네랄과 비타민 결핍 그리고 가축으로부터 전염된 홍역, 결핵 등의 질병으로 병들었어.

핵심은 농업을 위해 정착을 해야 했고 식량을 더 생산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어.

그리고 비축분을 쌓았지만 곧 상위 엘리트에게 빼앗기고 이에 더 고된 노동을 했지만 행복한 삶은 아니었을 거라는 거야.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상위 엘리트들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 세력화했어.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있어.

민주, 자유, 행복 같은 관념들은 실재하지 않아.

우리가 이런 관념을 굳게 믿어야만 질서가 유지될 수 있어. 이는 상호 주관성이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압제와 착취가 뒤따르지.

 

호모 사피엔스가 동물과 진정한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 사건은 수메르에서 점토에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야.

뇌의 용량을 넘어서는 숫자를 기록하기 위해서이지.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 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제3부 인류의 통합

만일 긴장과 분쟁과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가 모든 문화의 향신료라면,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의해 찢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까지 있다. '인지 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지 조화가 되었다면 인간은 만족하고 거기서 멈추었을까?

하지만 모순은 늘 해결을 향한 갈망을 일으키게 하지.

 

엄청난 숫자의 문화는 지속적으로 통합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글로벌 문화라는 말이 등장했어.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화폐, 정치 그리고 종교야.

 

먼저 돈은 민족, 종교, 문화를 뛰어넘어 통용이 되었어.

적을 미워하면서도 그 적의 화폐는 좋아했지.

돈은 신뢰를 기반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했어.

하지만 돈은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되어 누군가 굳게 믿어온 가치관마저도 철저하게 부서 버린단다.

 

제국은 여러 부족이나 민족으로 이루어진 통치체제야. 당연히 여러 문화가 속해 있겠지.

제국은 이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반대로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동화가 되어간단다.

 

최초의 종교는 일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생겨났어.

하지만 제국이 거대화되며 자신의 종교를 주류화해야 하기 때문에 선교할 필요성이 강해졌지.

일신교이든 이신교이든 모두 교리에 있어서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

여기에는 신을 믿지 않는 종교들이 있는데 내면의 핵심과 자유의 보호를 외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내부의 평등을 보호가 으뜸이라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그리고 인간 이하로 퇴화하는 것을 막고 초인으로 진화하도록 고무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가 있단다.  나치는 진화론적 자유주의를 외치며 인종 청소를 자행했어.

종교가 인간의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지만 종교의 과거와 발전 과정을 보면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여.

 

인간은 늘 사후확증편향을 저지르기 때문에 역사에 방향이 정해져 있다거나 필연적이라는 말은 신빙성이 없단다.

이건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야. 전문가들은 늘 결과를 보고 이유를 만들어 내니까.

그러니 우리는 미래에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어야 해.

 

제4부 과학혁명

과학혁명의 출발은 호모 사피엔스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야.

그 이전에는 여러 종교나 성인들의 말씀으로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어.

하지만 과학혁명은 경제적 지원이 필요했고 이는 정치 경제적 제도가 뒷받침을 해주며 되먹임 고리가 되었단다.

이런 고리는 과학과 제국을 결합시키며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어.

특히, 근대에 유럽의 국가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거느리는 데에는 이런 과학의 힘이 컸어.

식민화가 되기 전의 여러 나라들은 자신에 대해 너무 몰랐어. 하지만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에 여러 분야의 전문 과학자들을 보내 이들의 역사부터 지리, 생물, 문화에 대한 연구를 했어. 그래야 효율적으로 이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여기에 자본주의는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 역할을 수행했어.

이런 자본주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신용의 확대로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어.

이전까지만 해도 똑같은 파이를 나누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자들은 욕을 먹었던 거야. 

바로 남의 것을 빼앗는 개념이 '부'니까.

 

이런 성장을 기반으로 이제 청교도나 스파르타의 검약 정신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야기로 전락했어.

지속적 성장을 하기 위해 기업은 소비를 부추기고 돈에 대한 탐욕을 드러냈고 사람들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어.

소비를 해서 자신을 억압하지 않도록 세뇌를 시킨 거야.

아빠가 보아도 요즘엔 절약하는 사람이 쩨쩨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심지어 성격도 안 좋게 보기도 해.

하지만 아빠가 늘 말하지만 절약이 너희들이 나중에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천이란다.

급기야 이런 소비주의를 기반으로 인간을 자연을 지배하며 오직 인간만을 위한 정책을 폈어.

생태계는 파괴되고 동물의 복지는 무시되었단다.

인간은 무엇을 향해서 성장만을 외치는 것일까?

 

사실상 인간의 행복과 안정감에 공동체의 역할은 지대했어.

하지만 국가와 시장은 공동체의 역할을 빼앗으며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

우리 민서, 명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공동체를 대체한 국가와 시장은 차갑기만 하고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어.

공동체가 모든 면에서 좋기만 하지는 않지만 우리 정서에 있어서는 기둥과 같은 역할이었지.

국가란 상상의 공동체는 사람들이 죽음도 불사하게 만들었어.

이런 상상의 공동체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로 구성된 공동체를 절대로 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란다.

 

뇌에 영향을 미치는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단다.

따라서 중세의 농부가 오두막을 완성하거나 현대 기업가가 전망 좋은 페트하우스의 지급을 완료했을 때나 행복의 크기는 같다는 거야. 

아빠는 사람들이 행복을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에도 나와있듯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한다면 행복은 늘 우리 곁은 지키지만 남들이 가진 것으로 자신의 행복을 평가하면 행복은 잠깐, 불행은 영원히 지속될 거야.

이런 점에서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채렵수집인이나 농업혁명 이후의 농업인 그리고 현대인은 서로 누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어.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 생각, 호불호를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들은 분노를 느끼면 '나는 화가 났다. 이것은 나의 분노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피하고 또 다른 감정을 추구하느라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특정한 감정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행위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함정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인간은 과학혁명을 통해서 신의 위치까지 도달하려 하고 있어.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는 일이 진행 중인데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그리고 비유기물 공학이 있어.

이 세 가지는 현존하는 인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인간은 브레이크가 들지 않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목표 없이 질주하고 있어.

따라서 도로의 끝 너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단다.

어느 우연의 한 조각이 인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지금도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병이나 고통에서 구한다는 명분으로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모든 걸 걸고 있어.

 

7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이들의 친구는 멸종되었고 게다가 호모 사피엔스 개개인의 행복은 증대되지도 않은 이 현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2024.08.12.월.20:30.... 민서, 명서는 자기 방에 있을 때.... 행복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행복의 진정한 기준은 과연 무엇인지 약간의 혼란에 휩싸인, 우리 민서, 명서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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