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역사 철학 강의
글: 심옥숙
그림: 배광선
독서기간: 2016.04.14~04.18
민서, 명서야... 드디어 서울대 인문고전 50선의 마지막권인 《역사 철학 강의》를 읽었어.
작년부터 읽기 시작해서 50권 사이에 다른 책 한 권씩 읽었으니 100권을 읽은 거네. 책을 읽으면서 아빠가 얼마나 한참이나 모자란 사람인지 더욱더 깨닫게 되는구나.
먼저 헤겔의 역사 철학은 칸트와 헤르더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 헤르더는 칸트의 제자이지만 역사 철학에 관한 책은 스승인 칸트보다 먼저 썼다고 해. 아빠는 역사의 주인은 이성이라는 칸트의 주장보다는 헤르더의 역사는 이성과 감성이 함께 한다는 주장이 더 마음에 와닿았어. 역사 철학은 역사 속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는지를 밝혀내는 학문이란다.
먼저 헤겔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면, 1770년에 슈투트가르트라는 남부 독일에서 삼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어. 슈투트가르트는 아빠가 독일 친구를 만나러 유럽 여행 중에 들렸던 도시야. 그때 헤겔에 대해 좀 알았더라면 헤겔의 자취를 좀 느끼고 오는 건데 말이야...
헤겔의 아버지는 법원에서 관리로 일했고 헤겔의 어머니가 학구열이 강해서 헤겔이 세 살 때부터 독일어를 배우게 하고 다섯 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우게 했다니, 상당히 조기교육을 시켰다고 할 수 있지. 헤겔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일찍부터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고, 이런 기록하는 습관은 결혼 후에는 가계부까지 직접 쓸 정도였고, 평생 이 습관을 지켰다고 해. 이런 건 아빠랑 좀 비슷하네..ㅎㅎ
이렇게 교육에 신경을 쓰던 헤겔의 어머니는 신앙심이 아주 깊어서 헤겔이 신학을 공부해 사제가 되기를 원했지만 헤겔이 열한 살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단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인문학교를 훌륭하게 마친 후 헤겔은 1788년부터 집을 떠나 튀빙겐에 있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
헤겔은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신학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대학에서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는데, 그들이 바로 나중에 유명한 철학자와 시인이 되는 셸링과 횔덜린이란다. 삼총사 가운데 셀링은 16세에 벌써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할 만큼 뛰어난 천재였고 다른 한 친구 횔덜린은 철학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는 시인이 되어서 다른 후배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다가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지.
헤겔은 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 헤겔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어. 헤겔의 아버지가 1799년에 죽으면서 약간의 유산을 남겨 주었는데 헤겔은 이 돈으로 가정교사 자리를 그만두고 1801년, 마침내 철학의 도시 예나로 갔단다. 그곳에서는 이미 셸링이 예나대학에서 철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서 그 덕분에 헤겔 역시 강의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가 얻은 지위는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아서 생활해야 하는 사강사 자리였지.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군대에 패하자, 대학도 폐쇄되어 헤겔은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지. 그래서 바이에른의 뉘른베르크 지방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수 겸 교장 자리를 얻어서 9년 동안 일했어. 그곳에서 1811년에 뉘른베르크의 명망 있는 집안의 딸, 마리 폰 투허와 결혼을 했는데 그때 헤겔의 나이는 이미 41세였고 부인의 나이는 겨우 헤겔의 나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고 해. 그런데 헤겔에게는 결혼하기 전 예나에서 자신의 집안일을 돌봐주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난 루트비히라는 아들이 있었어. 그리고 정식으로 결혼을 한 마리 폰 투어와의 사이에서는 딸 하나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중 첫째 아들이 역사학자로 헤겔의 책을 펴낸 칼이고 둘째 아들은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 그러나 딸과 아들 루트비히는 일찍 죽고 말았어.
헤겔은 교장으로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철학 연구를 했고, 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실은 《논리학》이라는 책으로 나타났어. 이 책은 놀랍게도 1812년, 1813년과 1816년에 세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헤겔은 세상의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되었지.
헤겔은 마침내 1818년 베를린 대학에서 죽을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단다. 헤겔은 60세가 된, 1830년에 베를린 대학 총장에 선출되었어. 그러나 헤겔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콜레라에 걸려서 총장이 된 다음 해에 죽음을 맞이했단다. 헤겔은 자신의 친구로서, 철학자 피히테의 곁에 묻히고 싶어 해서 소원대로 그의 곁에 묻혔지.
헤겔은 역사의 목적은 자유의 실현이라고 했어. 그리고 역사는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고 모든 게 필연이라고 했어. 우리 민서, 명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는 역사책을 읽으며 우연한 일이 역사를 바꾸는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헤겔의 이 말엔 조금 공감이 가지 않았어. 그리고 국가 이전은 역사가 아니라고도 했지. 하지만 우리 국사책엔 엄연히 구석기시대부터의 역사가 나온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건 역사의 사건들이 아니라 역사 철학에 관한 거야.
역사의 목적인 자유 실현을 위한 수단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열정이야. 열정은 자신이 하려는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수단이고 곧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야. 두 번째는 국가야. 역사의 주인인 정신이 자유를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펼쳐가야 한다고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가치야. 사람은 신적인 특성을 가진 존재로서 자기 자신 스스로가 목적이야.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특성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수단으로 신으로부터 얻는 목적을 실현할 수 없어. 결국 인간이 세운 정신의 목적과 수단은 같다는 말이야.
헤겔은 자유가 실현된 국가는 게르만이라고 했어. 국가 안에서 법과 인륜의 보호를 받으며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가 실현된 모습은 국가라고 해. 그런데 모든 국가 안에서 자유가 실현되지는 않아. 고대 동양의 군주제는 역사의 초기 단계라 하고 그리스 시대가 청소년기 로마시대가 성년기 그리고 게르만으로 마무리되지.
그리고 이런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이성은 영웅을 이용한다고 해. 헤겔이 말한 자유의 실현단계인 게르만으로부터 200년이 지났어. 지금 이 시간도 역사에서 빠지지 않을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단다. 과연 현대의 국가 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있는 걸까? 역사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걸까? 몇몇 의문들이 들지만 아직 모른다가 대답이야....
2016.04.19. 00:05.... 너희들은 아직도 안 자고...ㅠㅠ 아빠는 졸린 가운데 간신히 너희들에게 글을 쓰고 이제 자러 가야지.... 좋은 꿈 꾸길, 우리 똥강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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