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한국현대사
글: 유시민
독서기간: 2024.09.24 ~ 2024.10.1
민서, 명서야~~ 오늘은 아빠도 광복 이후 잘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어.
또 박식함과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잘 풀어 설명해 주시는 유시민 작가님의 책이어서 더 좋단다.
요즘 '알릴레오 북's'의 독서 토론을 보며 한권 한 권씩 읽어 나가고 있는데 유시민 작가님의 예리하면서도 폭넓은 지식과 지혜에 감탄하고 있어. 어떻게 본원적인 문제와 자신의 철학을 잘 엮어서 말을 저리도 잘하실 수 있는지... 부럽기만 하구나.
1. 1959년과 2020년의 대한민국
프롤로그에서 작가 자신이 태어난 시기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어.
그리고 아래와 같이 느낀다고 했어.
나는 부끄러움과 분노, 긍지와 설렘, 희망과 불안을 함께 느낀다. 대한민국은 '흉하면서 아름다운 나라'다.
역사는 단면만을 제시하지 않고 복합적 사실들을 늘어놓아.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함께 가질 수밖에 없어. 어느 역사를 긍적적 또는 부정적인 면만 가득한 곳이 있을까?
또한 역사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객관적 사실에 역사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나 시대, 경험, 철학에 의해 풀어내니까.
결국 같은 사실에 전혀 다른 역사적 해석이 나올 수 있는거지.
1959년은 유시민 작가님이 태어난 해야. 절대빈곤의 시기였어.
그러나 현재는 일상의 모습은 양을 넘어 질적 전환을 확실히 이루었어.
광복 이후, 그리고 6 · 25 전쟁 이후 이승만은 국민의 경제적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어.
그는 국민들이 잘 사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에만 정력을 쏟아부었어.
모두가 가난했지.
그러나 2020년은 풍요롭지만 고르지 않은 민주국가의 모습이 되었어.
이 과정에는 산업화 세력이 중심에 있지만 국민들 또한 천민자본주의로 돈만 좇았어.
인간은 욕망에 이끌려서 행동을 하지.
기본적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게 복종할 뜻이 있어.
하지만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매슬로우의 자아실현 단계를 이상을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
그리고 이들은 불의에 도전을 한단다.
그 첫 도전이 1960년 4·19 혁명이야.
이 혁명으로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냈어.
2. 4 ·19와 5 ·16
이승만은 초기에는 애국자였지만 역시 권력은 초심을 지키는 일에는 실패했어.
개인이 실패하면 나라에 큰 영향이 없지만 그는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이 계속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발길질을 해댔을 뿐이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로 해산하여 친일파들이 권력을 잡도록 한 죄는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어.
외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세울 수 있다고 했어.
첫 째는 역사의 대의명분이고,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인야.
이승만은 위 세 가지 모두에서 실패를 했어. 똑똑한 개인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살리려는 확고한 철학과 의지가 없다면 그 똑똑함을 개인만을 위해서만 사용된단다.
4 ·19로 독재자를 몰아낸 국민들 중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세력의 부재가 또 다른 악재를 낳았어.
1961년 5 ·16 쿠데타로 박정희가 다시 화려한 독재자가 되었거든.
아빠의 부모 세대는 많은 이들이 박정희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유는 절대빈곤에서 그들을 구제해 주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자기가 배를 곪지 않는 대신에 누군가는 부당하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지.
이 쿠데타의 성공은 기존 정치인들의 무능도 관련이 많아.
박정희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에서 선생님이 되었어.
하지만 그는 일본 이름으로 두 번이나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일본에 충성을 다했어.
일본이 만주에서 패하자 갈 곳이 없어진 그는 갑자기 광복군에 들어갔어.
이런 모습을 볼 때 그는 자신에게 이로움을 준다면 이데올로기이든 오늘의 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굽신 거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어.
아빠가 가장 부끄러움을 느끼는 장면은 이런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을 만든 우리 국민들이란다.
3. 절대 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1970년대 한국경제는 옳든 그르든 박정희에 의해 성장을 했어.
경제성장은 보수당이 집권하든 진보당이 집권하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월트 로스토 교수는 경제성장의 패턴을 찾았다고 주장했어.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성장의 요점은 한 나라가 어느 시점에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거야.
박정희는 자유 시장도 전체주의 경제도 믿지 않고 이를 혼합해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어.
이런 방식을 중국이 시장경제로 변환할 때 연구했다고 하니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 거야.
그렇게 한국은 국가주도형 산업화로 성공을 거두었어.
1959년에는 노동력만 있었고 자본과 기술이 없었어. 박정희는 이전에 장면 정부가 세워놓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그대로 사용했어.
산업화의 첫 과제는 원시적 축적이고 다음으로 단순 제조업 분야를 발전시켰어. 이후 중화학공업으로 중점 과제를 옮기며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필요해졌지.
이런 과정에서 수입 물자 소비는 엄격히 제한하여 국부를 늘리려 했어.
파독 광부, 독일 간호사 파견, 중동 건설 현장, 기생 관광 등을 통해 피땀이 물든 돈을 모았어.
그런데 대부분의 부는 대기업으로 들어갔다는 게 문제였지.
이제 좀 잘 살기 시작하자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어.
정경유착으로 부를 독식한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뒤에는 오히려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힘과 권력이 높아졌어.
이들은 돈으로 누구든 살 수 있었지.
IMF시기를 거치며 양극화는 더 심해졌어. 비정규직은 정규직 연봉의 60% 정도밖에 받지 못하니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어. 게다가 정직원이 될 희망도 없었어.
복지 제공으로 이를 줄여보려 했지만 미미한 영향을 주었을 뿐이야.
세계는 더욱 밀접히 연결되면서 외교 또한 무척 중요해졌어.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강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지금도 정치인들은 매일 저 잘났다고 싸우고 있고 민생을 외치고 있지만 과연 진정한 민생을 걱정하는 국회의원이 몇 이나 되는지 궁금하구나.
4.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한국형 민주화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어.
바로 연속 ·동시다발 ·전국적 도시봉기야. 우리나라는 북으로는 막혀있고 삼면은 바다로 되어 있어 섬과 다름이 없어. 중동처럼 인근에 테러 거점을 만들 수도 없고 중국과 베트남, 중남미와 달리 특정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장기항전을 벌일 수도 없지.
칼 포퍼는 이상적 이데올로기를 위해 사회 전체를 개조하는 혁명에는 반대했는데 이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야. 즉,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기보다는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개혁에 집중하자는 거지.
그는 모든 혁명을 반대하지는 않았는데 전제주의나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정당하다고도 했어. 포퍼의 이 주장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이 걸어온 길이야.
박정희 시대는 독재로 인권과 자유를 억압했음에도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깊지 않았어. 다들 먹고살기 너무 바쁘기도 했고 기본적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니 다른 데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겠지.
10월 유신으로 박정희가 죽고 2개월 뒤 전두환은 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어.
이때부터는 끊임없는 집회와 데모가 일어났어.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고 그들을 짓밟았지만 철저한 언론 통제와 도시 외곽 봉쇄로 다른 국민들은 이에 대해 모르고 있었어.
아빠도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성당에서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여주어서 알게 되었어.
독재에 대한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야당 인사, 농업자 등 계층의 구분 없이 끊임없는 시위를 했어.
위에서 말한 연속 ·동시다발 ·전국적 도시 봉기는 결국 전두환을 무릎 꿇게 했어.
그는 연임을 꿈꾸었지만 거친 저항에 그렇게 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진보 진영에서도 노태우를 이길 수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하고 균열되어 결과를 얻지 못했지.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발전을 하여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어. 하지만 지금 보면 가끔은 너무 방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이 억압보단 낫다는 생각이 든단다.
이후 아빠가 기억하는 가장 큰 사건은 박근혜 하야 촛불 시위였어.
당시 우리 민서, 명서도 광화문에 데리고 가서 시위를 했단다. 너희들은 역사의 산 증인이야. ㅎ
5. 단색의 병영이 무지개색 광장으로
현재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여기서 아빠가 인구가 감소한다면 오히려 미래 세대한테 좋은 일이라고 한 생각에 대해 공인 중 처음으로 같은 생각을 한 분이네. 아빠는 그렇게 인국가 늘어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면서도 인구 감소에 대해 큰 우려를 하는 최재천 교수님의 생각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꼈거든.
지금의 민둥산 면적은 1960년대에 비해 5%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삼림육성을 잘 관리했어.
민둥산의 직접적 원인은 가정 난방과 취사 연료, 화전, 상업적 벌목 등이었어.
박정희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삼림 관리를 철저히 지시하여 지금의 푸른 대한민국이 된 거야.
이런 경우는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삼림을 훼손한 아이티는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고 삼림 보호를 지속적으로 관리한 도미니카 공화국은 잘 사는 나라라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해. 이 두 국가는 한 섬에 있었지만 자연보호에 따라 빈부의 결과가 극명했어.
아빠 어릴 적에만 해도 오후 5시만 되면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 했어. 지금 너희들이 보면 어수꽝스러운 행동이지만 이 시절에는 국민들을 오로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관념으로 속박하려 했어.
노동운동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성장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높여 놓았어.
그중 22살의 나이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연민하여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 전태일 열사가 큰 몫을 했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행위는 아무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어.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의 지위도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상승했어.
하지만 아빠는 요즘 전국장애차별철페연대에서 출근 시간대에 일반 시민들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하는 행위는 너무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여. 다른 사람의 불편이라도 야기해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리라는 생각은 오히려 반감만 얻는단다.
성소수자들은 역사적으로 제대로 기를 못 펴고 박해를 받아왔는데 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은 개인의 취향이고 이는 민주주의에 합당하다는 견해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어.
아빠 친구 한 명도 올해 커밍아웃을 하여 좀 놀라긴 했지만 그 친구는 그동안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면 남한테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자유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세상에 나오고 또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성의 지위도 아직까지 완전하진 않지만 점점 더 발전하고 있어.
6. 75년 이어진 적대적 공존
예전에 읽었던 소설 《태백산맥》에서 보았듯이 조금만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만 해도 군, 경찰은 이들을 잡아다 고문과 협박을 일삼았어.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사회였었지.
우리 정부도 자신이 불리할 때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에 간첩 사건만 한 게 없기 때문에 수시로 조작하고 자체 증거를 만들어서 크게 만들어 주의를 끌었어. 이런 만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 들어가 고문을 받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어.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보수 정당에서 애용하고 있어.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 공존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전후 세대의 지지를 끌어내려 시도했어. 이런 행태에 넘어가는 우둔한 국민들이 있기에 이런 유치한 방법이 아직도 먹히고 있으니 우리 정치가 후진적 형태에서 벗어나려면 국회의원들의 각성이 꼭 필요하단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당국이 적대관계를 해소하려 노력한 네 번의 기회가 있었어.
두 번째 기회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 7·4남북공동성명」이었고 두 번째는 1991년 노태우 대통열 때 남북당국이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야.
세 번째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한 「6·15공동선언」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10·4공동선언」이었어.
그러고 보면 보수당은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어. 그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할까만 생각하며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건 북한이 발사한 박격포나 서해안에서의 연평해전에서 우리 국민이 죽거나 다치든 상관할 마음이 없어.
지금은 우리는 북한과 또 다른 국면에 진입해 있고 무척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도마 위에 올려져 있어.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쏴대고 핵실험을 하며 위협하고 있고 우리는 말로만 핵 사용하면 북한 정부는 무너진다는 주장만 하고 있는 상황이지.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정치적 혼란이 발생한다면 남한까지 휩쓸릴 가능성이 무척 크단다.
아빠도 한때 북한 국민들은 왜 시위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가장 좋은 건 평화적 통일이야.
이런 평화적 통일을 하려면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고 북한 자신의 정치체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국민들을 위해서 권력을 내려놓아야 해.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하지만 언젠가든 무엇이든 충격을 일으키는 사건은 터지게 되어 있어. 그게 역사이니까.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우리 민서, 명서는 우리나라가 거쳐온 길에 많은 문제와 오류, 실수 등을 겪었지만 세계에서 훌륭한 나라임을 잘 깨달아 보렴. 이제 너희들이 더 훌륭한 국가를 만들어 가는 거야.
2024.10.01.화.13:58.... 민서는 자기 방에, 명서는 수학 학원 다녀오고 자기 방에 있을 때.... 갑자기 찾아온 가을이 왠지 낯설기만 한,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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