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글: 찰스 다윈
번역: 이한중
독서기간: 2020.02.09~2020.02.15
민서, 명서야~~ 오늘은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찰스 다윈에 대해 읽었지만, 이 책은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어. 그가 인생의 후반부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돌아볼까?
1장 내 정신과 성격 발달에 대한 회상(1809년 2월 12일 ~ 1827년 12월 31일)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의 슈루즈베리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어. 어린 시절 그는 호기심이 많았다고 해. 호기심은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란다. 그는 직관력이 뛰어나고 동정심이 많았던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 하지만 아버지는 피를 싫어하고 다윈도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수술을 하는 광경을 보고 그 자리를 뛰쳐나간 것은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던 듯 해. 에딘버러 대학에서는 의학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사냥에 대한 열정이 늘어났어.
형 에라스무스는 화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다윈은 형의 실험 조수 역할도 했다는구나. 먼저 '호기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구나.
2장 케임브리지 생활(1828년 1월 1일 ~ 1831년 12월 26일)
의학을 포기하자 아버지는 다윈에게 신학자를 권유했어. 그렇게 해서 다윈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가게 된단다. 이곳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역시 헨즐로 교수와의 만남이었어. 비글호에 탑승하게 권유한 것이 헨즐로 교수였기 때문이야. 두 번째로는 딱정벌레를 수집하는 것이었다고 해. 참 특이하지 않니? 다윈은 헨즐로 교수와 가깝게 지내며 여러 학식 깊은 사람들과 많은 의견을 나누며 생각의 깊이가 커졌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구나.
3장 비글 호 항해(1831년 12월 27일 ~ 1836년 10월 2일)
비글 호 탑승을 강력히 반대하는 아버지를 외삼촌 조스와 함께 설득하는 데 성공한 다윈은 비글 호 선장 피츠로이 선장과 친해지며 드디어 항해에 나선단다. 하지만, 피츠로이 선장은 성격이 Up and Down이 심해 다윈과 가끔 심하게 싸웠다고 해. 아빠 같으면 같이 지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다윈은 잘 버티며 5년이나 그와 같은 선실을 사용한 것은 대단하구나. 물론, 선택의 여지도 거의 없었겠지만 말이야. 비글 호 항해는 다윈을 혁명적 과학자로 만들어 주었어. 그는 여러 지질들을 보며 추론 능력이 길러졌어. 5년간 사고 습관은 과학사에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가장 근본적인 도움을 준 것이라고 했단다. 이런 다윈을 보며 아빠가 얼마나 설렁설렁 일하는지 깨닫게 된단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구나. 한편, 피츠로이 선장과는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는 자살을 했다고 해...
4장 영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기까지(1836년 10월 3일 ~ 1839년 1월 28일)
다윈은 5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다윈은 결혼에 대해 상당히 고민한 거 같아. 그는 자신이 가장 관심이 있는 연구에 결혼이 방해될까 봐 주저한 것이 아닐까? 그는 노트에 결혼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상세히 적은 다음에 결국, 결혼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어.
다윈은 비글호 항해의 초반에는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지역의 동, 식물을 연구하며 점점 신앙심이 사라졌어. 그건 아마 자연선택설에 대해 생각하면서가 아닐까 싶네. 자신이 깊숙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반대의 생각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자질이란다.
5장 런던을 떠나 다운에 정착하기까지(1839년 1월 29일 ~ 1842년 9월 14일)
다윈은 런던에 3년 8개월 동안 살면서 건강이 악화되었어. 그러면서도 여러 자연과학자들과의 만남으로 지식의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었지. 그중 라이엘, 후커, 헉슬리는 그의 평생 지원자가 되었지. 하지만, 그는 건강 악화로 런던 근교 다운으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어. 아마, 평화로운 곳에서 건강을 추스르며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을 거야.
6장 다운에 살면서 지금까지(1842년 9월 15일 ~ 1876년 5월)
다운으로 이사 온 다윈은 이곳에서 그나마 평화롭게 은둔하듯이 살았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은 아빠의 꿈이기도 해. 역시 다윈도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 행복감을 많이 느꼈어.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건강 악화는 다윈이 행복해하는 연구와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했어. 1851년 4월 24일 열 살을 갓 넘긴 큰딸 애니가 세상을 떠난 것은 그에게 큰 상실감을 일으켰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는 애니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젖곤 했어. 이런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구나...
7장 자연과학에 대한 사랑
다윈은 평생 연구와 책 쓰는 일에 일생을 바쳤어. 이것이 그를 즐겁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겠지. 아빠는 이렇게 한 분야에 지겨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이 존경스럽단다. 다행히도 쓰는 책들이 아주 많이 팔렸다는 거야. 만약 책이 팔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면,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다윈은 다른 사람의 책을 보고도 많은 영감을 얻었어. 특히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진화론의 힌트를 많이 얻은 것 같아. 민서, 명서야~ 늘 위대한 사람들은 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주위나 다른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단다. 그러니 당연한 것도 당연히 보지 않는 것에서 사소한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렴.
알프레드 월리스가 보낸 논문은 다윈이 정리하고 있는 이론과 정확히 똑같았어. 그리고 월리스와 함께 논문을 발표했어. 그래도 다윈은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같아. 과학자는 누가 먼저 이론을 발표하느냐가 생명과 같기 때문이야.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그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큰 비난에 직면해야 했어. 그리고 큰 실수를 했다거나 작업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경멸적인 비판을 받을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면서 위안을 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잘했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민서, 명서야... 아빠도 위의 글을 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성하게 된단다. 이런 마음을 한 시라도 가진 적이 없으니...
다윈은 관찰과 실험만이 자신의 삶 전부라고 했어. 이것이 끝나는 날이 자신이 죽는 날이라고 했어. 하지만, 너무 관찰과 실험에만 몰두하다 보니 다른 취미생활을 잃어버린 듯 해. 이건 좀 유감스럽구나...
위대한 학자인 다윈의 자서전을 읽으니, 그의 위대한 생각과 노력, 몸이 굉장히 아파도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모든 것을 쏟는 그의 의지는 너무도 존경스럽단다. 나중에 영국에 가본다면 슈루즈베리에 가서 그가 숨 쉬었던, 이제는 희미해진 공기라도 느껴보고 싶구나. 아빠도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생긴 듯하구나. 바로 아빠만의 자서전을 쓰는 일이야. 물론, 아빠가 훌륭한 어떤 일을 해서 쓴다는 것은 아니야. 그저 우리 집안의 역사와 아빠의 평범한 삶에 대해 너희들과 자손들에게 알리고 싶구나. 거기서 조금이라도 너희들이 조그만 교훈이라도 얻는 다면, 그것으로 큰 가치를 가질 것이야. 그런데 자서전을 쓸 시간이 아빠에게 주어질지 잘 모르겠구나...
2020.02.15.15:46...... 민서, 명서는 오후 1시경 일어나서 TV 보다가 먹고 다시 TV 보고 있을 때.... 아빠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하면 너희들 인생의 시간들이 순간순간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우리 민서, 명서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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