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래 군(郡)의 열두 달 그리고 이곳저곳의 스케치
글: 알도 레오폴드
번역: 송명규
독서기간: 2020.08.16~2020.08.22
민서, 명서야~~ 오늘은 삼림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위스콘신 주에 오두막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 자연을 즐긴 알도 레오폴드가 쓴 책을 읽기 시작했어. 1930년대 이런 경험으로 책을 썼지만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자연을 파괴하고 화학물질이 도시를 물들일 무렵부터 이 책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 90여 년이 지났지만 자연은 더 위기에 처한 것 같구나. 우리가 사는 이곳에 서울에서 살 때 보다 곤충이 더 많다는 것에 아빠는 안심을 했지만, 아파트 주민들 일부는 벌레가 많다며 기겁을 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곤충이 많다는 것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인데 말이야.
제1편 모래 군의 열두 달
일월
한국에서의 일월이면 아주 추운 시기이지만 이곳에서는 해빙이 서서히 일어나나 봐. 겨울 동안 깊은 잠에 빠졌던 짐승들에게 야릇한 동요를 일으킨다니 말이야. 하지만 들쥐에게는 눈 아래로 뚫어 놓은 자신들만의 통로가 없어져 생명의 위험이 높아진단다. 수토끼들은 사랑을 위해서 최초의 결투도 하고 말이야.
이월
농장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에겐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의 위험이 있다고 저자는 말했어.
하나는 아침거리의 근원이 식료품 가게라고 생각하게 될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열의 근원이 난방기라고 생각하게 될 위험이야. 첫 번째를 위해서는 채소밭을 가꾸는 것이고 두 번째를 위해서는 참나무 장작을 불을 피워 쬐는 것이야. 아빠가 마지막 삶으로 생각하는 것들이야.
80년 정도를 산 죽은 참나무를 톱으로 썰며 참나무가 자라온 흔적이 나이테를 근거로 저자는 각 나이테마다의 환경에 관한 특이한 사건들을 떠올려 주었어. 아빠는 각 나이테 설명 뒤에 나오는 '쉽시다! 하고 팀장이 외친다. 그리고 우리는 숨을 돌린다.' 란 표현이 마음에 드는구나.
삼월
삼월 해빙의 음산함을 가르고 한 떼의 기러기가 날아들면, 봄의 신호야. 기러기들도 수다가 엄청 많아서 서로 재잘재잘 떠든다는구나. 그리고 옥수수밭을 초토화시키기도 해. 그리고 동료들도 불러 함께 지내며 이곳 농장 근처에는 642마리가 찾아왔다고 해.
사월
사월에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 이 오두막은 외부 세계와 단절이 돼. 그런데 공포스럽고 걱정스러울 만 한데 오히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거 같아. 이 홍수의 계절에 상류로부터 쓸만한 많은 목재가 떠 내려온다고 해. 역사가 스며든 목재를 사용하여 만든 물건은 박물관과도 같아.
저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드라바 같은 작은 식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그리고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화재를 견디는 굴참나무에 대해서도 말한단다. 멧도요의 아름다운 춤에도 열광하며 매일 행복감으로 감상하는구나.
오월
오월이면 아르헨티나에서 꼬리물떼새가 돌아온다고 해. 기둥 위에 앉아있는 꼬리물떼새의 우아함에 감탄하고 있어. 그리고 이곳에서 새끼를 낳아 기른단다. 새끼는 30일 만에 다 자라서 팔월까지 비행학교를 졸업한다고 하는구나. 한 때 사냥으로 수많은 긴꼬리물떼새가 희생되었어.
유월
저자는 송어를 낚기 위해 오리나무를 분기점으로 하는 원류 근처로 올라갔어. 그곳에서 송어를 보고 낚시를 하여 세 마리를 낚았어. 그는 자신의 고깃 바구니에 가득 찬 것은 고기가 아니라 추억이라고 말했어. 그렇지, 현재의 우리의 아름다운 경험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
칠월
저자에게는 대지주들과 마찬가지로 소작인들이 있어. 그들은 소작료 납부에는 태만하지만 권리 주장에는 무척 까다로워.
그 소작인들은 바로 방울새, 로빈, 인디고멧새, 굴뚝새, 밀화부리, 쓰레셔, 솔새, 블루버드, 비레오, 토히, 홍관조 등이야. 저자는 새벽 3시 30분부터 커피포트와 개를 데리고 이들 소작인들을 관찰한단다. 비록 피곤한 시간대이지만 그는 얼마나 행복을 느꼈을까? 그리고 한 교외 묘지에 자라는 실피움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하지만 실피움의 생명력에 저자는 감탄을 하지.
팔월
저자는 그림은 아주 오래가서 여러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지만 강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저자의 마음속에만 그림이 남는다고 했어. 한 순간에만 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저자는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 것 같아.
구월
구월 아침에는 새들이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들의 음악에 저자는 특별한 매력을 느꼈어. 허밋 개똥지빠귀, 학, 초원뇌조, 메추라기가 바로 그들이지. 메추라기가 자신의 집 현관 앞에서 울 때면 새벽 찬가로 예우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어. 고요한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 새벽에 은은히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새소리는 아빠도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시월
저자만이 아는 숨겨진 목도리뇌조 사냥터에서 몰래하는 것은 색다른 맛이 있다고 했어. 저자는 자신의 개와 함께 뇌조 사냥을 나서지. 사냥을 하며 여러 동물들을 보는 즐거움에 왜 사냥터에 왔는지 잊는 것 같구나. 저자는 환경주의자인 것 같은데 왜 뇌조나 파트리지 사냥을 할까? 아빠도 이것은 인정하지만, 우리에게 적당히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얻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과도하면 자연의 부품을 아예 빼버리는 것이지.
십일월
이제 겨울이 다가오며 사방에는 거센 바람소리와 작은 파도가 강가에서 찰랑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기러기도 안녕을 말하며 작별을 고하며 사라지지.
저자는 다른 나무보다 소나무를 더 사랑했어. 저자는 자연보전론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해.
'나는 자연보전론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으며, 나 자신이 적지 않은 글을 썼다. 그러나 보전론자에 대한 최고의 정의는 붓으로 쓴 것이 아니라 도끼로 쓴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도끼질을 하는 동안, 혹은 어떤 나무를 벨까 결정하는 동안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가의 문제이다. 보전론자는 그가 나무를 찍을 때마다 자신의 땅 위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중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의식하는 사람이다. 물론 도끼로 쓰건 붓으로 쓰건 서명들은 서로 차이가 있으며,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나무의 질병까지도 자신이 농장을 구입했을 때 함께 따라왔다고 했어. 처음에 질병이 나쁜 것인 줄로만 알았지만 질병으로 인해 죽은 나무들은 새들에게 여러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또 여러 동물들의 안식처를 제공해서 꼭 나무 질병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어. 이는 관찰 없이는 알 수 없는 것들이라 귀중한 경험이네.
십이월
저자는 박새에게 고리를 달아 매년 이들이 몇 년이나 찾아오는지 관찰하고 있어. 그런데 65290 번호를 달고 있는 박새는 5년이나 찾아왔어. 다른 박새들은 2년이나 3년 정도 찾아온 후에는 보이지 않는 데 말이야. 저자가 보기에 65290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 보이지만 그만의 살아가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 이렇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새가 발길을 끊으면 저자는 그리움이 쌓일 것도 같아.
제2편
이곳저곳의 스케치
위스콘신
저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수억 년으로부터 내려온 자연이 인간의 손길을 거치면서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해.
'어느 날, 우리가 보전이라는 자선을 베푸는 도중에, 어쩌면 지질학적 시간이 다하여, 마지막 학이 이별의 트럼펫을 불고 장엄한 늪에서 하늘을 향해 나선을 그릴 것이다. 구름 저 높은 데서 사냥 나팔 소리와 유령 사냥개 무리의 짖는 소리, 작은 방울 딸랑이는 소리가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는 결코 깨지지 않을 침묵, 은하수 건너에 있는 초원에서야 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모래 군은 다양한 새들의 서식처야. 그곳에는 새들이 좋아하는 만찬이 널려 있기 때문이지. 위스콘신의 모든 숲과 프레리에서 비둘기 기념탑을 제외하고는 비둘기를 볼 수 없어. 그 옛날 수많은 비둘기로 덮여 있던 숲에 비둘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 마지막 비둘기를 사냥한 사냥꾼은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이야기하겠지. 멸종의 위기에 있는 마지막 동물을 사냥한 인간은 오직 고기만 생각했을 거야. 황금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갈랐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일리노이와 아이오와
버스 여행을 하며 길가에서는 프레리의 유물들이 자라고 있어. 이제 농장마저도 편안한 생활을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수확을 위해 토지를 혹사시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지.
저자가 파트리지를 총으로 쏘아 죽는 장면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고 했어. 그는 파트리지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자는 사냥과 낚시를 좋아하는 것 같구나. 그가 극단적인 환경론자였다면 사냥이나 낚시에 대해 책에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야.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이곳에서는 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산은 역사의 증인이야. 어떤 식물과 동물이 살았고 사라졌는지를 모두 기억하지. 사람들은 늑대를 싫어해서 늑대를 몰아내고 사슴과 소의 낙원을 만들었어. 하지만 늑대가 사라지고 사슴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나무를 죽이기 시작했어.
저 멀리 있는 에스쿠딜라에 사는 큰 회색 곰을 죽이자 에스쿠딜라의 존재 가치는 사라졌어. 다양한 생물은 서로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종의 멸종은 생태계 자체를 파괴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지.
치와와와 소노라
굵은부리앵무새의 서식지를 찾아가며 그들의 수다에 즐거워하면서도 이들이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순간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저자의 모습은 근심으로 가득 찬 문장으로 느낄 수 있어.
저자는 동생과 원생 지대에서 지낸 시간을 인생의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이것은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고 다시는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어.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인간의 때가 듬뿍 묻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야.
저자의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죽인다"란 표현이 왠지 미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두렵구나.
오리건과 유타
해로운 식물들은 동서남북의 경계를 넘어 퍼지고 있었어. 이 잡초들은 정착자들의 쟁기가 번식에 적합한 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야. 개귀리는 번식력은 매우 뛰어나서 온통 개귀리 천지였어. 이는 과거에 저지른 토지 이용상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 간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매니토바
클란데보예 늪은 인간은 쓸모없는 곳이라 여기지만 이 늪은 다양한 생물을 키우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축복과도 같아. 하지만 인간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늪을 메우고 있어. 그리고 저자는 '진보는 농장과 늪지,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이 상호 관용과 조화 속에 공존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라고 했어. 만약, 저자가 살았던 시대보다도 훨씬 자연이 파괴된 것을 보면 얼마나 혀를 찰까...
제3편 귀결
보전의 미학
여기서 말하는 레크리에이션이란 사냥이나 낚시를 가리켜. 원생 지대에 뚫리는 도로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게 하지. 하지만 보전관리들은 자연을 보호하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들이 레크레이션에 참여하도록 만들었어. 저자는 자연 과정의 인식도 레크레이션의 한 분야이면서 자연을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했어. 먼저 이런 인식을 한 후 레크레이션을 한다면 자연에 대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할 것이기 때문이야.
'레크리에이션 개발은 아름다운 시골로 도로를 뚫는 일이 아니라 아직도 차가운 인간의 마음속에 감수성을 심어주는 일이다.'
미국 문화와 야생 동식물
저자는 야생 세계와의 접촉과 경험에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해.
첫째, 국가의 고유한 기원과 진화를 일깨워주는, 즉 역사의식을 자극하는 경험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가치가 있다.
둘째, 우리가 토양-식물-동물-인간이라는 먹이사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생물상의 근본 구조를 일깨워주는 경험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가치가 있다.
셋째, 한데 뭉뚱그려 '스포츠맨십'이라고 부르는 윤리적 절제를 훈련하는 경험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가치가 있다.
우리 인간의 문화는 모두 야생 세계로부터 시작되었어. 그런데 이런 야생 세계를 파괴시키는 행위를 가속화시키는 사냥 장비업자들은 장비를 개발하여 더 쉽고 더 많은 동물을 잡게끔 하는 것을 저자는 안타까워해. 그래서 이런 행동에는 윤리적 절제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사실, 재미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행동이지만, 앞에서도 말한 '인식'이 없다면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과 다를 바가 있겠니.
'이 즐거움을 현대의 지성을 통해 거둔다면 즐거움뿐만 아니라 지혜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생 지대
저자가 활동하던 1940년에 이미 원생 지대는 좁아지고 있었어. 목장이나 밭을 만들고 도로를 뚫으며 원생지대는 조각조각으로 쪼개지며 그곳에 사는 동식물에게는 마치 고시원과 같이 좁은 곳에서 살라는 것과 같았어. 원생 지대를 여행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닌 카누와 동물들에게 짐을 지우게 하고 다니는 것이 제대로 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했어. 지금은 후자는 불가능하게 되었구나.
과학은 토양-식물/동물군을 회복시키거나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어. 지금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연구를 하고 있을 거야.
대형 육식동물의 멸종은 생태계 교란을 가져왔어. 캐나다 쪽으로 간 회색곰들을 불러와야 하지만 산림청은 면양 산업을 장려하며 회색곰이 돌아오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은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는 거야.
'원생 지대는 줄어들 수는 있어도 늘어나지는 않는 자원이다.' 한 번 파괴되면 인공적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단다. 그래서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야.
'원생 지대의 문화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요컨대 지적 겸손에 딸린 문제이다. 토지에서의 뿌리를 상실한, 생각이 얕은 현대인들은 자신은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적 혹은 경제적 천년 제국을 운운한다. 모든 역사는 언제나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되는, 항구적인 가치 기준을 찾는 인간의 끊임없는 여행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학자들뿐이다. 왜 가공되지 않은 원생 지대가 인간사에 정의와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오직 학자들뿐이다.'
위의 문장 내용은 아마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토지 윤리
토지 윤리는 사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야. 토지윤리안에는 토지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을 보호해야 하는 윤리가 담겨있으니까. 다만, 토지윤리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전체 지구 생물의 공동체를 위한 의무 인가 하는 목적으로 나눠지고 있어. 인간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본성도 생각해야 하지.
이 두 목적을 각각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어. 우리 민서, 명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토지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같은 존재야. 토지에 비료를 많이 사용하여 점점 황폐화된다면 우리는 생명의 순환에 제동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야.
우리 인간은 진화에 비해 너무나 멀리도 발전해왔어. 그리고 이 생명의 어머니인 토지를 점점 잊어가고 있어. 우리가 사는 곳 주변만 보더라도 우리는 흙과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우리 인간의 본성과 기원에 대해 이해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 생명체를 위해서 인간의 발전을 위해 다른 생명들에게 해로운 방법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단다.
2020.08.23.12:55..... 민서는 아직도 쿨쿨 ㅜㅜ 명서는 엄마와 TV 보고 있을 때....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우리 민서, 명서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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