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글: 노엘라
독서기간: 2020.08.12~2020.08.16
민서, 명서야~~ 오늘은 감성이 녹아있는 그림과 음악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아빠가 그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음악은 가요만 많이 들어서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른단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인 번뇌, 사랑, 고통 등이 담긴 예술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아. 한 장의 그림과 음악 속에 녹아져 있는 창조를 느낄 때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럼 우리 민서, 명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아볼까?
1장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모네 & 드뷔시
감정의 조각들은 사랑이 되고
클로드 모네는 한 사물이나 풍경을 빛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어. 그래서 <루앙 대성당: 흐린 날의 정문>은 빛에 따라 27장을 그렸다는구나. 모네는 평생 사랑했던 아내 카미유가 죽는 순간까지도 아내의 안색이 변화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 그는 아내의 죽어가는 얼굴을 그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인간은 이런 본래 모습의 시간에 본능을 더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구나.
드뷔시도 피사로,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자주 토론을 했다고 해. 그는 그가 느끼는 그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했어. 그래서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 형식과 화성을 버렸다고 해. 이런 것이 창조이고 예술이란다.
실레 & 베르크
애증, 그 강렬한 이끌림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가 그린 누드는 모두가 뒤틀리고 비틀어진 모습이야. 성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두었던 실레에게 성이란 두려우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었어. 실레는 그림 속에서 왜곡된 모습으로 성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어.
베르크 또한 그가 만든 <룰루>라는 오페라에서 자살, 살해, 동성애, 매춘, 탈옥, 사랑 등을 담고 있어 실레의 적나라한 누드를 연상시키고 있다고 해.
실레와 베르크는 두 여인 사이에서 사랑 때문에 괴로워 한 공통적인 경험이 있단다.
들라크루아 & 베를리오즈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랑은
베를리오즈는 1827년, 파리에서 공연을 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오필리어 역과 줄리엣 역을 맡은 스미드슨을 보고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그의 구애를 뿌리쳤어. 그리고 <환상교향곡>을 만들었어. 이 곡은 실연에 빠진 예술가가 아편을 먹고 자살을 택했으나 이에 실패하고 환각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꿈과 환상을 오가. 결국 그녀의 사랑을 받아내지 못한 그는 그녀를 살해하고 그는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한다는 내용이야.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지 약 3년 후 스미드슨의 사랑을 얻어내고 결혼을 했다는구나. 하지만 10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어. 이런 것을 보면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아. 순간의 감정은 평생 내 모든 것을 바칠 것 같지만 시간은 그 마음을 가만 두지 않아.
들라크루아의 그림 <파가니니>처럼 그는 인간의 내적 감정 묘사에 중심을 두었어.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에서는 낭만주의를 대변하며 인간의 내재된 야생적 욕구, 잔인함 등을 표현하고 있어.
모로 & 바그너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귀스타브 모로는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에서 살로메의 팜므파탈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사자, 새, 뱀과 같은 동물무늬들과 연꽃무늬 등을 그녀의 몸에 새겨 넣어 그녀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바그너 역시 그의 작품에 라이트 모티프(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또는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악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를 사용해 인간의 감정을 상징적인 악구로 표현하고 있어.
바그너는 자신의 스폰서였던 베젠동크의 아내인 마틸데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모로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알렉산드린을 그리워하며 <에우리디케 무덤 위의 오르페우스>를 그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부그로 & 브람스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의 <비블리스>를 보면, 비블리스의 모습은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보여. 오빠를 사랑한다고 하자 오빠는 떠나버리고 눈물이 되어 버린 여자. 부그로는 인상파에 반하여 고전주의를 고집했어. <보헤미안>을 보아도 소녀의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그림이야. 아빠는 부그로의 그림에서 그림의 주제는 매우 사실적이지만 그 외의 주변부는 희미하게 그린 것이 선명함과 불투명함의 조화를 통해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브람스 또한 고전주의 형식을 고집했는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진부한 음악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곤 했다고 해. 브람스는 자신의 은인이었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감춰야만 했다는구나. 이런 그의 혼자만의 사랑은 그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겠지만...
클림트 & 시마노프스키
단 한 번의 잊지 못할 입맞춤
구스타프 클림트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적 윤리와 사회가 정해놓은 도덕성을 벗어나 성을 수면 위로 끌어냈어. 그는 <키스>라는 작품을 통해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결합을 표현하고 있어.
시마노프스키도 관능적 음악 세계를 창조했어. 비잔틴과 그리스 문화 그리고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 또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표현력에서도 클림트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
2장 불안은 창조의 씨앗이 되고
터너 & 슈만
다시는 오지 않을, 이토록 뜨거운 순간
윌리엄 터너가 그린 풍경화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어.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려 했어. 그는 눈보라가 치는 날, 자신을 배의 기둥에 묶고 눈보라를 눈으로 보았어. 그만큼 그는 자신이 느껴 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눈보라>라는 작품을 통해 표현했어.
슈만은 자신의 스승인 비크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비크의 딸, 클라라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 그리고 클라라와의 사랑을 '밤에'를 작곡하여 자신의 감정을 나타냈어.
터너와 슈만은 정신병이 가족력이었어. 이런 자신의 정신병을 인지하고 예술로 승화시키고 결국 둘 모두 정신병원에서 죽었다고 하는구나. 정신병이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이를 감내해야 했다는 것이 슬프구나.
칼로 & 뒤 프레
아팠구나, 네가 많이...... 아팠구나
첼로스트 뒤 프레는 무대 위의 화려함 뒤에 숨은 외로움, 슬픔, 고독을 견뎌내기 힘들었어. 어릴 적 언니 힐러리에게 " 나는 이다음에 크면 전신마비가 걸릴 것 같아"라고 말했고 그녀의 예언처럼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어 죽게 되는 다중경화증이라는 병에 걸려 15년간 투병을 하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고 하는구나.
프라다 칼로는 18세가 되던 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척주, 쇄골, 갈비뼈, 골반이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되었으며 오른쪽 발은 짓이겨졌어. 이 사고는 그녀를 화가로 이끌었어. 아버지가 천장에 달아준 거울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거야. 멕시코의 유명 화가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바람기가 많았던 리베라는 결혼 후에도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어. 그를 떨쳐내지 못한 괴로움은 그녀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결국, 1953년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거치고 두어 번의 자살시도 끝에 심한 폐렴으로 47세에 생을 마감했어.
위대한 예술가 인생에 닥치는 고통과 시련은 그들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뭉크 & 쇤베르크
불안은 창조의 씨앗이 되고
에드바르트 뭉크는 "질병과 정신병 그리고 죽음은 나의 요람에서부터 나를 평생 따라다니는 천사이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의 질병과 정신병이 자신의 예술적 원천임을 알고 있었어.
쇤베르크는 작곡가이기 이전에 화가였어. 그가 그린 자화상 <붉은 응시>는 뭉크의 <절규>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 그리고 그가 작곡한 <달에 홀린 피에로>는 공포스럽고 왜곡된 분위기를 연출해.
생각보다 불행했던 예술가들이 많아서 아빠는 많이도 놀라고 있어.
프리드리히 & 슈베르트
끝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슈베르트는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어.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마왕>은 슈베르트가 18세 때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작곡한 작품이야. 그는 25세쯤 친구 쇼버와 어울리다 매독에 걸려 죽음을 피할 수 없었어. 그리고 가난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보내야 했던 슈베르트의 심정과 죽음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겨울 나그네>를 남기고 죽어.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7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형제 3명마저 잃게 돼. 어릴 적 겪은 가족의 죽음이 그를 우울증과 은둔적 생활로 몰아넣은 듯 해. 그의 그림 <참나무 밑의 수도원>은 앙상한 가지와 건물의 잔해는 음산하고 죽음을 나타내는 저승을 나타내는 듯하구나. 또한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에서는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위대한 자연 앞의 초라한 인간과 그림 속의 인간이 '곧 나도 자연 속으로 사라질 거야'라는 마음을 먹는 것처럼 보여. 우리 민서, 명서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는 언젠가 죽으니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알마 타데마 & 생상스
가장 달콤한 유혹,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다
알마 타데마의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는 얼핏 보기에 화려한 꽃밭 속의 여인들, 바깥에서 그 모습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가 평화로워 보이지만 방탕하고 괴팍했던 로마 황제 헬리오가발루스의 음란한 파티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향기로운 꽃으로 유혹하여 꽃 속에서 질식해서 죽는 여인들...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또한 장미 같은 아름다움으로 삼손을 유혹하고 결국 파멸로 이끈 델릴라는 팜므파탈의 대표적 여인이야.
알마 타데마와 생상스는 자신보다 15세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소녀와 결혼했고 영화 제작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해.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3장 자유로부터 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미켈란젤로 & 데 프레
불완전해서 오히려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 운동은 미켈란젤로가 인간의 몸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그는 이전에 어떤 화가도 표현하지 못했던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표현했다고 해. <최후의 심판>에 나타나는 400개 이상의 인간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어. 그가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 중심의 세계에 대해 탐구했는지 설명하고 있어.
조스캥 데 프레는 미켈란젤로처럼 생전에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았어. 이것은 미켈란젤로와 마찬가지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야.
미켈란젤로의 미완 작품 <론다니니 피에타>는 오히려 완성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해. 그는 돌 속에 조각품이 원래 있었는데 자신이 그 조각을 드러나게 한다고 했어.
로트레크 & 비제
자유로부터 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비제에게는 3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이중 두 명은 하녀와 창녀였어.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카르멘>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거야.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그는 이 오페라의 성공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안타깝구나.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았고 같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역시 하층민을 주제로 작품을 남겼어.
로트레크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두 번의 다리 골절로 인해 몸의 성장이 멈춰 그의 신장은 1.5미터에 그쳤다고 해. 결국, 이런 신체조건은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고 그는 파리의 뒷골목으로 들어가 하층민들과 함께 인생을 보냈다고 해.
발라동 & 말러
사랑할 자유, 꿈꿀 자유
발라동은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자 화가였어. 르누아르, 드가, 샤반, 로트레크가 즐겨 그렸던 그녀는 이들의 수많은 작품에 등장해. 하지만 같은 발라동이지만 이들의 그림 속에서는 각각 다른 사람으로 나온단다. 각각의 다른 시선이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 묘사하게 만들었어. 그녀는 많은 예술가들과 사랑하고 또 울렸다고 해.
발라동처럼 음악계에는 말러가 있어. 그녀 또한 수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빼앗아갔어. 그녀를 위해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8번>을, 알반 베르크는 오페라 <보체크>를 헌정했고,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는 그녀와 자신의 사랑을 그린 대작, <바람의 신부>를 그렸다고 하니 정말 매혹적인 여인인 듯하구나.
이 둘은 사랑할 자유를 내세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고야 & 베토벤
내 인생의 혁명이 필요할 때
베토벤과 고야는 시대적 상황 변화에 따라 예술계의 혁명을 일으키며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첫발을 내디뎠어. 베토벤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선보이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음악, 그의 음악은 혁명적인 것이었어.
미술계의 혁명을 일으킨 고야의 그림은 기존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달리 공포와 긴장감, 두려움과 혼동을 나타내고 있어.
그는 스페인을 점령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선량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광경을 보며 이런 그림을 그렸지. 인간의 무자비함, 광기, 폭력에 대해서 말이야.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 <영웅>은 프랑스혁명의 영웅 나폴레옹에게 이 곡을 헌정했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노하여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힌 악보를 찢어버렸다는구나. 우리가 믿었던 영웅이 나를 배신할 때만큼 분노에 찰 때도 없단다. 이건 지금의 시대에도 많이 벌어지고 있어.
4장 예술, 일상을 만나다
폴록 & 케이지
우연의 이끌림
존 케이지 음악은 전에 읽었던 《클래식 노트》에서 소개된 <크레도 인 어스>를 들어본 적이 있었지. 그는 말했어. "세상에 빈 공간이나 빈 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엔 언제나 볼 것이 있고 들을 것이 있다. 아무리 고요함을 만들려고 노력해 봐도 안전한 고요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라는 것이야.
폴록의 그림은 특별한 형체가 없는 우연에 의한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했어. 그림을 그리기 전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거야. 폴록은 우연적으로 떨어지는 물감들을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와 조화시킴으로써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단다.
칸딘스키 & 스크랴빈
오감으로 느끼는 사랑
칸딘스키와 스크랴빈은 모두 인상주의 아티스트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어. 그리고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신비주의 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지. 칸딘스키는 미술이란 외적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내면과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스크랴빈은 이보다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해 신의 경지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고 믿었어.
칸딘스키도 스크랴빈도 각각의 색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더 나아가 악기들마다 고유의 색이 있다고 믿었어.
드가 & 푸치니
진실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진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눈병으로 앞을 잘 볼 수 없었고 말년에는 거의 실명에 이르렀던 드가와 가난으로 파리 뒷골목을 전전긍긍하다 성공 후에는 여자와 오리 사냥, 자동차 수집을 즐기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푸치니. 드가는 여성에게 관심이 없어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푸치니는 유명한 바람둥이였어.
이렇게 다른 둘 모두 서민들의 애환을 진실된 모습으로 그려냈어. 꾸며진 모습이 아닌 현실을 그려낸 작품은 우리의 진실이 담긴 모습이야.
뒤샹 & 사티
굿바이 고정관념, 헬로 자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예술 작품은 우리에게 우물 안에서의 하늘만이 아닌 드넓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단다.
마르셀 뒤샹은 <샘>에서 소변기를 뒤집어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어.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 반기를 든 것이지.
사티 또한 아카데미즘을 반대하고 전통예술을 조롱했고 뒤샹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의 소재를 예술로 끌어들여 새로운 예술의 범위를 정의했어. 그는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 존 케이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단다.
아빠도 이 글을 읽으니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아빠가 말하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이 고정관념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지는구나.
워홀 & 번스타인
예술, 일상을 만나다
대중성과 예술의 결합을 이끈 워홀과 번스타인. 20세기 중반, 미술계에서는 팝과 예술을 혼합시키는 '팝아트'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는데 가장 잘 알려진 작가가 바로 앤디 워홀이야. 그는 상업미술가로 시작해서 예술의 주제로서 절대 적합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일상용품을 작품 소재로 삼았어. 그리고 대량생산에 따른 상업주의적 사회의 모습을 그의 작품에 투영하여 대중심리를 관통했어.
번스타인도 워홀과 마찬가지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 그는 근엄하고 진지했던 기존 지휘자들과는 달리 무대에서 춤추고 기뻐 날뛰며 모든 감정을 몸으로 드러냈어. 그는 관중과 대화했고 관중을 이해시켰어.
워홀과 번스타인은 자신의 활동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고 하니 인성도 좋았던 것 같구나. 아빠도 예술작품을 알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왠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져서 담을 넘어서기가 힘들어.
지난번 읽었던 《클래식 노트》에 이어 이번에 미술과 음악에 관한 책을 읽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하게 되어서 아빠는 기쁘단다. 아빠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매료되고 작곡가가 꿈이었으나, 피아노를 배우지 못해서 20대에 다시 시도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단다. 지금도 아빠는 피아노를 가장 좋아해. 맑은 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말 낯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좋아.
예술은 인간의 본성이 만드는 것인데 지금은 담이 낮춰지고 있다고 해도 일반 사람들은 낯설게 여긴단다. 이는 그들의 어느 만큼의 자존심으로 대중에게 다가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대중가요를 생각하면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니?
2020.08.16.22:10..... 민서는 TV 보다가 자기 방으로, 명서는 엄마가 '당근'통해 사준 기관총 장난감에 빠져 있을 때.... 너희들을 아빠가 만든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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