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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 14- 방법서설(데카르트)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15. 7. 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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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법서(데카르트)

글: 박철호

그림: 이대종

독서기간: 2015.07.17~07.20

 

민서, 명서야~~ 오늘의 책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

그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긴 분이지.

이 책은 1637년 6월에 네덜란드의 라이덴에서 출판되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였단다. 그 이유는 라틴어로 쓰였다면 학자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의 책을 판단할 까 봐 당시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프랑스어로 썼다는구나.

 

방법서설은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야. 데카르트는 학교에서 여러 학문을 배우면서 수학을 빼고는 모두 확실한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데카르트는 9년 간의 장기 여행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진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성으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그리고는 확실하고 명확한 수학을 기반으로 진리를 찾으려 했지.

 

데카르트는 아버지인 조아셍 데카르트가 고등법원 평정관이라는 법복 귀족의 아들로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중서부 투렌 지방의 라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 어릴 적 몸이 아주 약했고 어머니인 쟌느 브로샤르는 데카르트가 돌이 지난 얼마 뒤에 돌아가시고 말았지. 허약했던 데카르트는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오히려 사색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어. 열 살이 되던 해에 라 플레슝서 중세식 교육을 받고 1614년 쁘와띠에 대학에 입학해서 1616년 법학사 학위를 받았어. 허약한 몸 때문에 그는 늦잠 자는 버릇을 갖게 되었고 잠에서 깬 후에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해.

데카르트는 여행을 하며 군대에도 들어가고 여러 곳을 여행한 후 파리로 돌아왔어. 데카르트는 정식으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헬레나 얀스라는 여인을 사랑했고 프랑신느라는 딸도 낳았어. 하지만 1640년 5살 난 딸을 병으로 잃고 나서는 결혼 생활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극도로 싫어했던 데카르트는 당시 종교전쟁으로 시끄러웠던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학문에 전념했어. 데카르트는 몇 권의 책이 출간된 뒤 사람들이 데카르트의 철학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이름도 점점 유명해졌어. 그리고 마침내 1649년에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데카르트를 스톡홀름으로 초청하게 돼. 하지만 그는 스웨덴으로 가는 것을 거절했지만 절친한 친구인 스웨덴 주재 프랑스 대사 샤뉘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스웨덴으로 떠날 결심을 하지. 하지만 크리스티나 여왕은 자신의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은 새벽 5시라며 그 시간을 공부시간으로 정했고 늦잠 자는 버릇이 있던 데카르트는 새벽에 일어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고 게다가 북유럽의 차가운 겨울바람도 데카르트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어. 몇 달간 여왕을 가르치기 위해 차가운 새벽바람을 쐬며 궁중을 드나들던 데카르트는 결국 감기와 폐렴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고 1650년 2월 11일 그의 나이 53세에 숨을 거두고 말았단다. 데카르트의 유해는 스웨덴에 묻혔다가 16년이 지난 1666년에 조국인 프랑스로 돌아왔다고 해.

 

민서, 명서야, 그래서 건강관리를 다른 사람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 하면 안 되고 자신의 몸과 맞는 생활을 절제 있게 해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단다. 이 아빠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점 한 가지는 학문을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위해 하지 말고 순수히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해야 진정한 너희들의 지식으로 쌓을 수 있단다. 너희들이 획일화된 현 교육제도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제 데카르트의 학문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볼까?

 

데카르트는 여러 학문을 배우면서 수많은 의심과 오류의 늪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어. 하지만 수학은 다른 학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증명이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른 학문들도 수학처럼 확실하고 분명하다면 결코 의심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그리고 그는 결심했어. 수학이 어떤 방법을 쓰는지 관찰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내기로 말이야. 이렇게 위대한 사상이 태어나게 되었지. 민서, 명서야,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의심해 보는 습관이 창조로 연결되고 그 창조는 이런 식으로 위대한 사상을 만드는 거란다. 위대한 사상을 만들기 위해서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관심이 점점 크게 되고 그것이 위대한 사상으로 연결되는 거야.

 

데카르트는 한 사람이 만든 마을이 더 훌륭할까, 아니면 여러 명이 만든 마을이 더 훌륭할까란 예를 들면서 한사람이 만든 마을은 처음부터 마을 계획을 잘 세워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지만 여러 명이 만든 마을은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틀리고 또 오래된 마을은 그때그때 필요로 집을 짓고 길을 만들기 때문에 길도 삐뚤 하고 외관도 볼품없게 변한다고 했어. 이것은 마치 철학을 빗대 이야기하는 거야. 철학을 논하면서 하나의 사상으로 모아진 적은 절대 없고 늘 각자의 의견이 틀리고 합의를 볼 수가 없었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야. 진리는 여러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에 의해 발견되기가 쉽다고 했어. 그래서 데카르트 자신이 이성이라는 등불을 이용해 진리를 찾기로 결심했지.

 

그리고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의 규칙을 정했단다.

첫 번째 규칙은 명백하게 참이라 알지 못한 것은 어떤 것도 절대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마라!!!

두 번째 규칙, 어려운 문제는 가장 잘 풀기 위해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들로 나누어라.

세 번째 규칙, 가장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가장 복잡한 것의 순서로 생각을 이끌어 나가라. 순서가 없는 것은 순서를 만들어라.

네 번째 규칙, 아무것도 빼놓지 않고 완전하게 열거했는지 전체적으로 검사하라.

 

데카르트는 위의 방법으로 진리를 찾고자 했단다.

 

이성을 도와줄 도덕 격률들에는;

1. 내 나라의 법과 관습을 지키고 어렸을 적부터 나를 가르쳐온 종교를 버리지 않으며, 그 밖의 다른 일에서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갖는 가장 온건하고 덜 극단적인 의견을 따를 것.

2. 할 수 있는 한 흔들림 없이 굳세게 행동하고, 가장 의심스러운 의견이라도 일단 그것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언제나 따를 것.

3. 운명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고 노력하고, 세계의 질서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바꾸려고 힘쓸 것.

 

위의 격률들은 도덕에 관한 것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을 이겨나가는 방법이기도 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 하나 좀 우스운 이야기를 하자면, 수 천년 전의 고대 바빌론의 문자를 어렵게 해독한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해독은 다음과 같아.

' 요즘 젊은것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우습지 않니? 요새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랑 똑같잖아..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을 근본으로 다른 진리들을 찾으려 노력했어. 데카르트는 세상은 신의 증명을 자기 자신은 유한하고 불완전한데 신은 무한하고 완전하다는 명제로, 그러니 유한하고 불완전한 자기가 신의 관념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했어. 완전한 존재의 관념이 불완전한 자기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어떤 것이 무에서 나왔다는 것만큼 모순이라고 했지.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정신의 외부에 있는 완전한 존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정신 속에 넣어 준 완전한 존재... 즉 신이 존재한다고 했어.

 

데카르트는 《우주론》이란 책을 쓰고 발표하려 했으나, 그 당신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소에 끌려갔다는 소리를 듣고 책의 출판을 포기하지. 왜냐하면 데카르트도 지동설을 지지하고 있었거든. 그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는 3가지, 즉 에테르, 불, 흙이라고 했어. 에테르는 공기보다 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어. 그래서 이 3가지가 서로 섞여 세상을 만든다고 했지.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론》에 나오는 물질의 4가지 구성요소 공기, 흙, 불, 물이라는 것과 좀 비슷했지만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밀어내고 자신의 자연학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어. 그리고는 데카르트의 합리적, 기계론적 사고방식이 지금까지도 세계를 지배했어.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여기서 증명이 되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은 물질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어. 하지만 그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그러면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는 난처해했다고 해. 민서, 명서의 생각은 어떠니? 정신과 육체, 둘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건 확실 해. 정신이 육체에 명령을 내려 육체는 움직이니까... 육체가 죽으면 정신도 같이 없어질까?... 곰곰이 생각해보렴. 지금까지 증명된 건 없어. 다만, 셀리 케이건 교수가 쓴《Death-죽음이란 무엇인가》란 책처럼 철학적으로 풀어간 내용도 있지만 지금까지 명확히 어떻다 말할 순 없어.

 

데카르트는 철학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의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연구도 열심히 했단다. 심장 운동의 힘을 열로 말한 것은 틀리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세포가 어떻게 전기 충격을 발생시키는 건지는커녕 세포가 무엇인지, 전기가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는 것을 알면 데카르트가 말한 그 심장운동의 원인인 열이 전기 충격과 비슷한 거 아닐까? 그는 사람이 만든 기계는 신이 만든 기계를 능가할 수가 없다고 했지. 데카르트가 신에게 많이 의지 한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는 자신이 연구한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연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이 자신이 연구한 것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더 나은 연구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길 바랐어. 그는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겸손하면서도 자존감이 컸다고 해.

 

민서, 명서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왜?"라는 의문에서 나온단다. 이 아빠는 이제야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지만 너희들은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렴.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민서, 명서 유치원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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