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411. 노자 도덕경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1. 9. 19. 21:12

본문

 

제목: 노자도덕경

글: 김광하 

독서기간: 2021.09.19~2021.09.26

 

민서, 명서야~~ 오늘은 자연 사상, 무위 등의 학설을 내놓은 노자의 《도덕경》을 읽기 시작했어.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적대시했어. 그래서 공자의 인(仁) 사상도 세상에 악이라 했지.

아빠가 막연히 생각했던 노자의 사상이 실제로는 좀 틀리는구나. 그래서 무엇이든 지레짐작하는 것은 위험하단다. ㅎㅎ

아직 책의 초반부만 읽었지만 노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유는 만물을 창조한다고 했어. 

즉, 자연의 덕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두어야 세상도 순환이 잘 된다는 거야. 이런 자연의 법칙 위에 인간의 사상이 더해지는 순간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세상을 악하게 만든다는 것이지.

우리 민서, 명서는 이런 사상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니?

 

공자가 나루터를 찾다가 자로가 장저와 걸익을 만난 이야기는 아빠에게 감동을 주었어.

혼탁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가 없다며 포기하며 사회를 등지고 사는 그들의 주장에 공자는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바꾸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 자로 또한 순간 스승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다 감동을 받았어. 

한편으로는 노자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했다는 생각도 들어. 인간은 늘 이익이 있는 곳에 모이게 되어 있는데 나만 상관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 같이 이기적인 발상이 아니겠니.

 

물론, 노자의 사상에서는 배울 점이 무척 많아. 그중 물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 공감이 간단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데 머무는 정치이다. 노자는 물을 비유로 들면서 낮고 천하게 여기는 자연계의 도를 따르는 정치를 설명하고 있다 도를 따르는 정치는 백성과 싸우지 않는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덕, 이것으로 왕과 백성들은 공평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어.

'백성을 다스림에 인위적인 수단을 쓰지 않으면, 자연의 덕을 따를 수 있다. 인위적인 명분과 수단이 없다고 하여 현실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에는 만물을 낳는 도의 덕, 즉 상(象)이 활동하고 있다. 무눌(물질이 없음)에 돌아와, 자연의 덕(象)을 따르는 것을 노자는 물질이 없는 상(無物 의 象)이라고 하고, 이럴 때 사람이 황홀하게, 즉 아득하고 흐리멍덩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득하고 흐리멍덩하다는 것은 이해관계의 분별을 떠나 편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뜻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속에 이해득실의 계산이 없다. 따라서 처음과 끝을 볼 수가 없다. 백성이 무엇을 얻겠다는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노자는 자연의 덕으로 살기 위해 성인과 지혜, 인과 의, 기교와 이익을 버려야 한다고 했어. 과연 욕망이 없는 것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태초부터 욕망을 채워온 것을 역사는 알고 있어. 이런 노자의 사상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즉,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근본의 판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지. 우리는 선입견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판단해.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없애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생각을 버려야 해. 어떻게 우리는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결과는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모순되는 내용이고 개인 참선의 목적이 아닌 국가 운영을 위한 조언이지만 아빠와 같은 개인에게 의미 있는 글들이 많단다.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사람은 걸을 수 없다.

스스로 보는 사람은 사물에 밝을 수 없고,

제 생각대로 보는 사람은 사물에 밝을 수 없고,

제 생각대로 옳다고 하는 사람은 옳고 그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제 생각대로 남을 공격하는 사람은 공이 없고,

제 생각대로 자랑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도에 있어서는 먹다 남은 밥이요, 쓸데없는 종기일뿐이다.

생명 있는 것은 늘 그것을 싫어하니,

그러므로 도가 있는 사람은 이런 곳에 머물지 않는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식이 있으나, 자기를 아는 사람은 밝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으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만족을 하는 사람은 부유하다.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다.

그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간다.

죽음을 맞이하되 이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수명을 다하며 산다."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는 도는 지금의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만큼이나 자연의 순환을 망가뜨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드럽고 조용한 도는 인위적인 강한 힘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아빠는 믿고 있어. 다만, 위의 글처럼 아빠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 아빠가 가지고 있는 편견의 우물 속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명예와 재화를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은 경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은 맞아. 하지만 자연 그 자체로 둔다면 조화로운 질서로 모두가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은 믿기가 힘들구나. 노자의 도와 덕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침으로는 맞지 않지만 개인에게는 많은 것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유교 사상과 법가 사상을 적대시하며 비판하지만 상황과 때에 따라 이런 사상들의 쓰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상은 없으니까. 인간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야.

 

"염담적막과 허무무위는 천지의 근본이요. 도덕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음을 쉰다. 마음을 쉬면, 평정하고 소박해진다. 평정하고 소박해지면, 고요하고 담담해진다. 평정하고 소박하여 고요하고 담담해지면, 걱정과 근심이 들어올 수 없다. 삿된 기운이 침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덕이 온전해지고 정신이 손상되지 않는다." -《장자》 각의 편

 

과연 노자가 개인의 수양이 아닌 국가 다스림 방법으로 도를 주장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정말 배움이 없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도의 상태는 원시 시대와 비슷할 것이고 도를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니 배우면 안 되는 것인데 도를 자연히 알 수 있을까? 지식을 쌓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가 공격을 해오면 노예가 되고 말 것인데... 아빠는 도의 깊은 의미가 있겠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구나.

 

이 책을 보며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점에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어 가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없지.

'선비 노릇을 잘하는 자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겨루지 않는다.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아래가 된다.

이것을 싸우지 않는 덕이라고 한다. 이것을 사람을 쓴다고 말한다.

이것을 하늘과 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고시대의 지극함이다.'

 

상(象)은 물질을 조화시켜 만물을 생성하는 자연의 덕을 의미한다.

정(精)은 만물을 움직이는 정기(생명의 힘)를 뜻한다.

자균(自均)은 저절로 평평하고 고르게 된다의 뜻이다.

충기(沖氣)는 음기와 양기 등 양극단의 기운을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자연의 덕이다.

 

자연의 덕을 실행하면 혼란이 없다는 말은 사실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야. 다른 유토피아적 환상과 다를 바 없지만 다만, 일부분 세상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에 노자의 사상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자연의 덕으로 다스려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어.

 

2021.09.27.09:15... 민서는 밤새고 학교 가고 ㅠㅠ... 명서는 온라인 수업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빠가^^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3. 노란 수첩  (0) 2021.10.01
412. 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  (0) 2021.09.27
410. 사랑을 그리는 숨은 꽃, 데레사  (0) 2021.09.17
409. 제 3인류 3  (0) 2021.09.14
408.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0) 2021.09.0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