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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울대 인문고전 50-15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갈릴레이)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15. 8. 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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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글: 정창훈

독서기간: 2015.08.08~08.12

독서 권유 ★★★☆☆

 

민서,명서야...오늘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천동설이 맞다고 하고 풀려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에 대해 이야기 해볼 까 해.. 지금 너희들은 미리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소리가 우스울 거야. 하지만 이 시대에는 신이 만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말은 죽음을 뜻하기도 했단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즈음에 아리스타르코스가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했지.

 

갈릴레이는 156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피사라는 곳에서 태어났어.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곳이지.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장남에게 성과 비슷한 이름을 지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 그래서 갈릴레이의 아버지는 갈릴레이에게 성과 비슷한 이름을 지어주었어. 갈릴레이의 아버지인 빈첸초 갈릴레이는 유명한 작곡자이자 음악이론가야. 빈첸초 갈릴레이는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어. 갈릴레이는 수도사가 되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어. 1581년 17세의 갈릴레이는 아버지 뜻에 따라 의학과 수학이 같은 학부에 속해 있는 피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지. 그때 피사 대학은 가톨릭의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결합한 스콜라 학파의 학자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었어.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일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해석하려 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반하는 주장은 사정없이 매도되고 공격당했어. 어느 날 갈릴레이는 피사 대성당에서 우연히 바람에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보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맞추던 갈릴레이는 무심코 자신의 맥박을 이용해 샹들리에의 진동 주기를 측정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진자의 등사성'이란 법칙을 발견했어. 그렇지 않아도 의학에 흥미를 잃은 갈릴레이는 공부하는 습관이 바뀌었어. 이때까지 수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했던 갈릴레이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접하고 수학의 매력에 푹 빠졌지.

 

1585년 갈릴레이는 피사 대학을 그만두고 피렌체의 부모 집으로 돌아왔어. 1592년에는 고체의 무게 중심에 관한 논문으로 28세의 나이에 피사 대학에서 일하게 되었지. 같은 해에 파도바 대학으로 옮겨 운동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으며 1604년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했어. '낙하하는 물체는 등가속도 운동의 법칙을 따른다' 갈릴레이는 과거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았어. 그리고 물체는 무게에 관계없이 동시에 낙하한다는 결론을 내렸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과는 상당히 달랐어. 이런 명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학자들은 갈릴레이의 주장을 믿지 않고 핍박을 했어. 그 후 1610년 초까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면서 많은 발견을 했어. 달 표면이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목성이 4개의 위성(유로파, 이오, 가니메데, 칼리스토)을 발견했고 또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변화, 토성의 고리 등도 관측했지. 1613년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틀렸음을 밝히는 3통의 편지를 발표했는데 체계적인 설명과 적합한 어휘 구사력으로 넓은 지지를 받았지. 하지만 갈릴레이의 지동설 지지에 위협을 느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학자들은 지동설이 성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어. 결국 1613년 3월 5일 로마 교황청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가 오류임을 발표했어. 피렌체로 돌아온 갈릴레이는 자신의 역작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1632년 교회의 검열을 마치고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지.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읽으려는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야. 1633년 69세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기소되어 로마로 소환되었어. 결국 갈릴레이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어. 그 후 감옥 대신 피렌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죽을 때까지 연금을 당한 채 살았어. 1634년에는 역학의 원리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두 개의 새로운 과학》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1637년 눈이 멀 때까지 계속 천체를 관측했단다. 그리고는 1642년 숨을 거둘 때까지 비비아니와 토리첼리 같은 제자들을 가르쳤어.

 

전에 데카르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갈릴레이가 지동설로 종교재판에 기소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데카르트가 책 출판을 포기했다고 그랬지?  정말 시대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은 힘든 일이야. 1992년 10월 31일에서야 로마 교황청은 전 종교재판에서 내린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모든 학문적, 이론적 권리를 선언했어. 갈릴레이는 이제야 하늘에서 웃을 수 있을 거야.

 

이 책은 살비아티, 사그레도, 심플리치오라는 세 명의 주인공이 지동설과 천동설에 관한 논쟁을 벌인단다. 살비아티는 지동설을, 심플리치오는 천동설을 그리고 사그레도는 중간자 적인 입장에 있어.

첫째 날에는 지구가 하늘에서 움직이는 물체들과 다른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이냐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해.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소요학파라고 부르고 심플리치오가 소요학파야.

 

둘째 날에는 지동설 이론의 증거를 제시하고 심플리치오와 논쟁을 벌이지. 살비아티는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심플리치오를 설득하지만 심플리치오도 만만치 않았어. 하지만 태도는 약간 변했지.

 

셋째 날에는 지구 공전에 대해 토의를 해.

 

그리고 마지막 날인 넷째 날에는 조석 간만의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함으로써 심플리치오를 설득하지.

 

물론 갈릴레이가 주장한 것들 중에 오류도 있어 하지만 그 옛날에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민서, 명서야.. 아무리 현대화된 사회라도 모든 현상이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단다. 세밀하게 관찰하면 아주 많은 오류가 있을 거야. 그런 점에서 세상은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몰라. 우리 민서, 명서는 어떤 사람이 될지 참 궁금하지만 이 아빠는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 하마.

 

2015.8.13.... 너희들은 유치원 가고 아빠는 야근하고 아침에 와서 한 숨자고 일어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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