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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진보와 빈곤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3. 7. 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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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보와 빈곤

글: 헨리 조지

번역: 이종인

독서기간: 2023.07.21 ~ 2023.08.17

 

 

민서, 명서야~~ 오늘은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빈곤도 비례하여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일반적인 생각은 생산력이 증가하면 빈곤이 점점 사라지리라 예상하지만 그 예상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부르주아들에 의해 빈곤도 따라 증가한단다.

현재의 시대를 잘 살펴보면 답이 나와. 아빠가 어릴 적보다 빈부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으니까.

이런 격차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바로 정부와 재벌들이지.

 

아빠는 한 시대를 동시에 살아간, 장소가 달랐지만 헨리 조지가 마르크스를 만났다면 그들은 분명 의기투합했을 것이란 상상을 했단다. 둘 모두 빈곤한 자들을 위하는 진실된 마음이 통했을 테니까.

헨리 조지가 대단한 것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을 했지만 거대한 카르텔에 반해 자신이 발견한 불편한 진실을 당당히 펼쳤다는 거야. 아빠도 너무나 닮고 싶은 부분이야.

 

이 연구 결과로 밝혀진 법칙이 어떤 내용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개의치 않는다. 만약 내가 도달한 결론이 이 시대의 편견과 정반대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결론이 오랫동안 현명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온 기존의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제1권 임금과 자본

헨리 조지는 당시의 임금 이론 즉 임금은 자본에서 나온다는 임금 기금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해.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노동의 대가인 생산물로부터 산출된다는 거야.

저자는 먼저 용어에서 오는 혼란을 없애기 위해 이를 명확히 한단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고 중에서 그에게 수입을 가져오리라 기대되는 부분"을 자본으로 보았는데 이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와 비슷해. 

이에 대해 저자는 자본을 "교환 과정 중의 부"라고 정의하고 있어.

자본은 생산물로 변환이 되면서 이에 따른 부가 원래의 자본보다 더 증가하지.

따라서 임금은 노동의 결과로 나온 생산물에서 나오지 고용자의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생산의 3대 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 중 토지와 노동이 아닌 것이 자본이라는 거지.

 

소비에 대한 수요가, 노동이 생산에 투입되는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일까?

자본이 노동력을 높이는 3가지 방식은 노동이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투입되도록 돕고, 노동이 자연의 생산력을 이용하도록 돕고, 마지막으로 노동의 분업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고 해.

정치경제학 교수 혹은 노동자가 제시한 해결책, 즉 자본을 증가시키거나, 노동자 숫자를 제한하거나, 노동자의 작업 효율을 올려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처방은 거부되어야 한다.

 

제2권 인구와 식량

2권에서는 맬서스의 이론을 정면 반박하고 있어.

맬서스의 《인구론》은 부를 가진 자들을 대변했어. 즉,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구의 증가는 식량의 한계에 직면한다고 했어.

이에 대해 헨리 조지는 여러 나라와 역사 사례를 들며 인구가 증가해서 식량이 부족한 경우는 없음을 주장해.

오히려 그는 사회의 불안정성이 빈곤을 늘림을 증명하고 있어.

바로 권력자들이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방법이 매우 잔인하기 때문이야.

아빠는 맬서스가 수도사라는 사실이 매우 놀라워. 성직자라면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함에도 권력자를 대변하는 이론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죽여야 한다며 이는 신의 뜻으로 위장하고 있어.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일랜드의 상황을 설명하며 결국 인구증가는 식량부족을 가져오지 않으며 결국 분배가 모든 문제의 원인임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해. 

인구 증가의 속도보다는 부의 생산과 소비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놀라우면서도 결정적인 증거들이 온 사방에 차고 넘친다. 만약 어떤 계급이 이런 풍요를 덜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배의 불공평이 전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제3권 분배의 법칙

이제 빈곤의 원인은 부의 분배에서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아담 스미스로부터 내려온 정치경제학의 잘못된 원리들이 존 스튜어트 밀, 리카도, 맬서스를 통해 확대 및 부동의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어. 

헨리 조지는 위의 확고부동한 이론들에 정면 반박하면서 결국 생산력이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지대의 증가가 이의 비율로 불어난다면 임금이나 이자는 증가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단다.

 

임금과 이자의 관계는 재생산 방식으로 사용된 자본에서 나오는 평균적 증가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가 올라가면 이자는 임금과 동반하여 떨어지거나 아니면 경작의 한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단다. 노동의 대가인 생산이 증가하면 누구나 임금도 함께 증가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야. 증가한 생산은 모두 지대로 빠져나간단다.

조지는 노동과 자본을 나누지 않고 자본은 노동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어. 노동의 생산력이 자본을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현 시대의 개념으로는 자본이 노동의 대가를 최저의 생산력에 맞춰 임금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본이 모두 차지한단다.

임금은 생산의 한계에 달려 있다. 혹은 지대를 지불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노동을 투입할 수 있는 자연 생산력의 최고점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

 

위와 같이 임금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설명한 뒤 임금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어.

● 토지가 공짜이고 노동이 자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곳에서, 전체 생산물은 임금으로 노동에게 돌아간다.

● 토지가 공짜이고 노동이 자본의 도움을 받는 곳에서, 임금은 전체 생산물로 구성되지만 노동을 자본으로 축적하기 위해 필요한 생산물의 부분은 제외해야 한다.

● 토지가 누군가에게 소유되고 지대가 오르는 곳에서, 임금은 지대를 지불하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이 가장 높은 자연의 생산점에서 생산한 것으로 고정된다.

● 자연의 기회가 모두 독점된 곳에서, 임금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에 의하여 노동자가 간신히 노동을 재생산하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조지는 지대가 빈곤의 핵심 원인임을 끌어낸단다.

 

제4권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리카도가 지대 상승은 인구 증가 탓이라고 한 뒤 맬서스는 이를 이용하여 굳건한 이론으로 만들었단다.

저명한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모든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 이론에 따랐지. 가난한 사람들 마저도 말이야.

하지만 조지는 인구의 증가는 곧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어. 하지만 이는 또 지대를 높이고 임금을 낮춘단다.

최소한의 생산력이 임금이라면 생산력을 높이는 차액은 모두 지대로 지출된다고 하고 있어.

토지는 인구가 증가하면 가치가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가치상승분을 모두 지대가 차지한다는 점이 사회가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늘어난다는 거야. 이는 기술의 개선으로 생산력이 증가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란다.

 

이 시대 토지에 대한 투기는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어. 이 의미는 토지 등 부동산에 투기를 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런 투기는 노동자들 삶의 질을 충분히 떨어뜨리고 있어. 아파트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빈부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단다.

 

제5권 문제의 해결

조지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업 불황의 근본 원인은 토지 투기라고 했어.

즉, 토지 주인은 토지를 이용하지 않고 그저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는 노동자들의 일터를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이 시절 토지는 모든 부의 원천이었어. 그러니 일반 노동자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기회조차도 없었고 굶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거야. 이는 밀림에 사는 야만인보다 못한 삶이야. 그들은 자유마저도 가질 수 없었으니까.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는데도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드는구나.

 

제6권 해결책

 

이 세상의 물건과 권리를 새롭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인간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시절 빈곤이 점점 심화하는 원인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었지만 조지는 이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모두 미흡하다고 했어.

1. 정부 비용의 절감

2. 노동자 계급의 교육 강화와 근검절약 습관의 촉진

3. 임금 상승을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노동조합)

4. 노동과 자본의 협동

5. 정부의 지시와 간섭

6. 좀 더 광범위한 토지의 분배

 

이중 교육은 빈곤을 벗어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면 모두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중 교육을 통해 능력을 키우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을 힘도 함께 생긴단다.

 

 

사회 발전의 자연스러운 방향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또 시대의 흐름과 나란히 헤엄치지 않는 해결책은 고려해 볼 가치가 없다.

 

그리고 조지는 진정한 해결책으로 토지 공유제를 내세운단다.

 

제7권 해결책의 정당성

헨리는 소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어.

하지만 토지는 노동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공기와 같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지주와 소작농들이 생각났어.

지주들은 죽지 않을 만큼, 아니 죽을 수도 있을 만큼만 생산에 대한 대가를 주고 자신의 지대는 점점 높여갔어.

이런 소작농 자리를 두고서도 경쟁해야 하는 빈곤자들은 그야말로 자유가 억압된 야만인과 다를 바가 없었어.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만 벌어지지 않고 멀리 떨어진 서양에서도 벌어졌던 거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정성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야.

 

과연 토지 사유제는 폭력의 결과물이란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을 누가 소유할 수 있을까? 

이것으로부터 빈부격차는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이런 자괴감으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어. 

 

제8권 해결책의 적용

토지의 생산력은 지대로 대부분 흡수되니 생산자와 자본가는 경쟁에 휘둘려 점점 빈곤해지는 19세기를 설명하고 있지만 현대에는 자본가는 지주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어. 자본가들이 19세기 못지않게 악착같이 부를 끌어 모으려 하며 로비를 펼쳐 비정규직을 만들어 더 빈곤 속으로 밀어 넣으며 자기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니까.

우리 사회는 최저 시급을 법으로 제한하지만 여전히 그 돈으로는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아.

 

결국 조지는 토지 사유제의 불공평함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토지세를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이런 방법이 실효가 있다고 생각해도 과연 지주들의 카르텔을 누가 깨뜨릴 수 있을까? 

이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빈곤한 사람들조차 이런 생각 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밥 먹고 사는데 만족하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토지는 누구의 소유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진실! 

아빠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이론이라도 옳은 것이라면 그를 추종하고 조그마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확신해.

 

제9권 해결책의 효과

토지가치세가 실현된다면 자신의 노동에 대해 100%를 가질 수 있다면 생산성은 얼마나 향상이 될까?

또한 빈곤의 고통과 공포가 사라진다면 계급의 구분이 점차적으로 없어지고 부에 대한 탐욕 또한 줄어들 것이라 조지는 이야기하고 있어. 이는 세상에 평등이 찾아올 것을 암시하며 또한 부분적인 사회주의를 예견하고 있어.

민주주의의 혼란함 속에 부분적인 사회주의는 꼭 필요하단다. 

베다 경전은 아주 진실한 말을 하고 있다. 현명한 까마귀 부샤나는 최고의 신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는 독수리에게, 가장 큰 고통은 빈곤이라고 말했다. 빈곤은 박탈일 뿐만 아니라 수치요 타락이다. 우리의 도덕과 정신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을 빨갛게 달군 쇠로 지져대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본능과 가장 달콤한 애정을 거부한다. 가장 활력 있는 신경을 비틀어대어 무기력하게 만든다.

 

우리 민서, 명서는 빈곤의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아빠도 극단적인 빈곤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아빠 또래에서는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경험을 했어.

이런 공포는 아빠에게 절약과 성실을 물려주었단다. 세상을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그 경험은 다시 아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심을 일으켰어. 

그런데 이 시대도 현시대도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의 본능이 인간 정신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안타깝구나. 그래도 그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 순수함과 이타심은 세계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야. 어쩌면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인지도 모르고...

인간성의 가장 강력한 충동에 호소하는 이런 유혹에 맞서서, 법률의 제재와 종교의 가르침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니 놀라운 일은, 인간이 그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이기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 아래에서 인간이 더 약탈적이고, 더 불신앙적이고 더 이기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성의 선량함과 좋은 의도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성의 측면에서 선량함의 흐름이 계속 흘러나와 인간의 도덕적 품성을 함양시킨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또 대부분 자녀를 두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사회 제도가 미비하다고 하더라도 신앙, 순수함, 이타심 등은 인간 세계로부터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조지가 이야기하는 공공의 비용으로 운영되는 철도나 우편, 통신 등은 증명이 되었지만 효율성이 무척 떨어진단다.

자신의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인간은 중력의 힘과 같은 방만함을 물리칠 수 없는 거야!

 

지대가 공동체를 위해 사용된다면 국가 행정업무가 간소화되면서 비용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고 했어. 

이는 인간의 탐욕이 빈곤에서 생기기 때문에 토지가치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지.

하지만 이기심은 인간 행위의 주된 동기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의구심이 들어. 왜냐하면 오랜 역사의 시간에서 늘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차별을 시도했어. 즉, 타인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기심이 있기 때문이야. 아빠는 인간의 본성이 온통 이기심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정 부분의 이기심은 타인과 차별화 욕구를 키운다고 생각해.

 

제10권 인류 진보의 법칙

진보를 마침내 정지시키는 장애물은 바로 그 진보의 과정에서 생겨난다는 진리이다. 예전의 문명들을 파괴한 것은, 문명 그 자체가 성장하는데서 생겨나는 상황인 것이다.

 

문명은 끊임없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단다. 설사 한 문명이 멸망하고 다른 문명이 들어서도 전의 문명은 새로운 문명의 토대로 작용하게 된단다. 따라서 발전과 장애물은 문명의 발전에 필연적이야. 우리 인생처럼 말이야.

 

조지는 문명의 차이를 우생학이 아닌 교육과 습관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반박한단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정설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더 논리적이고 다양한 증거가 필요할 거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은 두 가지 필수 요소가 있는데 모임과 평등이란다. 이 둘의 균형이 깨진다면 불평등 발생으로 인해 사회 발전은 저항을 받게 된다고 했어. 그래서 권력자들은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현재의 제도와 법률 등 문화를 유지시키려 한다고 했어. 이는 크게는 국가에서 작게는 회사에서도 상당히 많이 벌어지고 있단다. 자신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나 부의 분배가 아주 불공평하게 이루어진 곳에서는, 정부가 민주적일수록 부의 불평등은 더욱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부가 그 자체로는 부패한 독재정부보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국가의 안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독재정부) 보다 훨씬 더 나쁘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부는 언제나 가장 최악인 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는 운영이 잘 되면 좋은 제도이기도 하면서 부패를 저지르기에도 또한 아주 좋은 제도란다.

 

조지는 그리고 마침내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낸단다.

부의 생산과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현재의 사회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가난과 불의는 불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난이 아예 없어지고, 인간 본성의 더 좋은 특징과 더 높은 능력이 완전 개발되는 기회를 맞는, 그런 사회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이 책에 대해 아빠가 존경하는 분이 나오는 유튜브에서 토지가치세의 단일 조세만 주장한 조지가 정치적 전략을 염두에 두고 토지가치세만을 조세로 주장한 것이라 했어. 아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는 책의 서문에서도 그리고 곳곳에서도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 정치적 염두를 둔 주장이라는 언급은 그를 모독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또한 조지의 아내는 남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단다. 우리 민서, 명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구나.

"나는 신체적 용기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도덕적 용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의무가 가라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런 용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밀고 나가는 용기,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면서 이 세상을 맞서는 용기."

 

이렇게 해서 이 책을 모두 읽었어.

속도가 무척 느리게 읽었지만 헨리 조지의 세상에 대한 선한 마음 또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단다.

우리는 왜 세상에 나왔는지, 과연 나만 잘 살기 위해서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타인과 항상 비교하며 더 크고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비싼 옷과 가방, 심지어는 더 잘난 애인이나 부인이 자신의 계급을 높여줄 거라는 착각으로 안타깝게 살아가고 있어.

진정한 삶의 모습을 위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2023.08.17(목).22:18....민서는 학원에서 아직 오지 않았고 명서는 유튜브에 빠져 있을 때....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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