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34. 강의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4. 11. 24. 20:19

본문

 

제목: 강의

글: 신영복

독서기간: 2024.11.21 ~ 2024.12.04

 

민서, 명서야~~ 오늘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지 20년 만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신영복 교수님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할 정도로 수재였던 그가 간첩 사건에 연류된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2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을까.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한 내용을 엮은 것이 지금의 이 책이야.

 

1. 서론

저자는 본인이 고전이 전공이 아니라서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쓰는데 부담을 가졌다고 했어.

비전공자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글을 쓴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을 거야.

 

오래된 미래란 표현은 과거가 곧 현재와 미래를 나타낸다는 뜻이라고 해.

과거는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삶 속에 체화되어 있으니까.

 

근대화는 서양 사상을 근본으로 발전이 되었어.

그런데 왜 동양 사상은 무시되었을까?

책에서 서양은 과학과 종교의 두 주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고 했으나 이 둘은 모순적인 관계야.

하지만 동양 문명은 비종교적 인문주의라 할 수 있어.

서양의 사상은 인간 개체에 중심을 두지만 동양 사상은 전체의 사상 즉, 관계에 중점을 두었어.

아빠는 이 둘 중 무엇이 낫다고 말하기 어렵구나.

이 두 가지 중심 사상이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서양의 지혜를 사랑하는 뜻인 철학과 동양의 도(道)는 차이가 있어.

철학은 우리 삶 저편에 있는 관념적 사상에 기초적 지적 지지가 있지만 동양에서의 도(道)는 우리 삶 한복판에 있는, 일상 속에 지지대가 있는 거야.

 

유교와 도교는 인본주의와 자연 철학에 그 뜻이 있지만 저자는 자연은 최고의 질서라는 노자 사상을 따르고 있어.

자연은 지구의 순환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야지.

 

모순과 조화의 균형을 위해 중용(中庸)은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것이 바로 이 중용이란다.

아빠의 경험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지적 재산을 모으면 이 중용이 세상의 진리란 생각이 들어.

어떤 분야에서든지 한쪽이 계속 옳은 바가 없어.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2. 오래된 시(時)와 언(言)

「시경」은 주나라 시대의 노래를 담은 민요집이야.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의 사실성에 있어.

민심이 반영된 노래라는 거야. 이 노래에 진전성이 있다는 이야기야.

광고처럼 꾸밈 없는 담백함으로 부르는 노래는 곧 백성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지.

 

「서경」은 2제(요, 순) 3왕(우왕, 탕왕, 문왕 또는 무왕)의 말씀을 기록한 거야.

이것이 문화가 되어 동양의 특징이 되었지.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후대에 계속 전해지기 때문에 왕은 올바른 정치를 펼쳐야 해.

또한 후대 임금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집이기도 하고.

 

저자는 곳곳에서 마오쩌둥과 레닌의 사회주의 사상을 은근히 칭송하고 있어.

그는 아직 자신을 오랜 기간 감옥에 가두게 했던 사상을 품고 있는 듯하구나.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누구의 신념이니까.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대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서경」 中

 

「초사」는 한나라 유향이 굴원, 송옥 등의 작품을 모아 펴낸 책이야.

「시경」이 북방 중원의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4언체 운문인 데 반해 「초사」는 양자강 유역의 낭만주의적 남방 문학이란다.

 

3. 「주역」의 관계론

「주역」은 대단히 방대하고 난해하고 관계론과 연관이 있어.

저자는 점을 보는 사람을 좋게 생각한다고 했어. 이는 겸손함에서 비롯된다고 했기 때문이야.

아빠는 재미로 점을 본 적을 있지만 큰 의미는 두지 않으려 해.

그건 아빠의 인생 범위를 점이 한계를 두는 것 같기 때문이야.

 

「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거야. 공자는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내용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했어.

「주역」은 공자의 숨결에서 살아난 것이나 다름없지.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 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와 실위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아빠는 산지박괘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박괘는 64괘 가운데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괘야.

이 절체절명의 상황은 반대의 시선에서 보면 어려움이 끝나고 희망이 살며시 보이는 단계이기도 해.

상대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된단다.

그럴 경우 그 어려움을 잘 버텨내면 희망이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어.

 

「주역」 사상은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 이야기하고 있어.

변화가 그 가운데 자리 잡고 변증법적 유물론으로도 나타낼 수도 있지

끊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절제와 겸손은 너희들을 빛나게 해 줄 거야.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논어」는 춘추전국시대의 오직 부국강병의 목적을 가진 여러 나라들에서 피어난 인간관계론에 관한 학문이야.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구절에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막스 베버는 동양 사회가 비합리적이라고 봤어.

그릇은 전문성을 나타내고 있어. 하지만 이 전문성이란 것은 평민이나 노예만이 가지고 있는 거야. 귀족과 제후, 왕들은 문사철 시서화를 두루 익혀야 했어. 

현재의 시대는 이 전문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재벌들은 문사철 시서화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어.

 

사회를 법으로만 다스리면 부작용이 크단다. 혼란된 사회라면 법치주의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안정되기 위해서는 신뢰와 덕이 필요해. 이 기준은 칸트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양심에 있단다.

 

화동론(和同論)은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여 관용과 공존의 논리야. 반면 동은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지. 즉,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야.

저자는 화동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국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빠는 오히려 독재주의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한 것인지... 현상을 너무 복잡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또한 모든 지식이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며 인간 중심론을 내세웠어.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오만하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어.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가 될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이 구절은 아주 유명해. 즐기면서 하는 일은 그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거야.

중요한 것은 지, 호, 낙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 하면 왠지 인자하고 청명한 성품인 느낌이 들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해.

그러나 여기서는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라고 했어.

우리는 인간의 사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즉, 관계가 우리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5. 맹자의 의

맹자는 공자 사후 100년 뒤에 시들어가는 유가사상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야.

「맹자」는 공자의 인(仁)이 개별적 관계라면 맹자의 의(義)는 사회적 관계에 관한 책이야.

맹자의 글은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게다가 문학적으로도 유려한 문체로 표본이라 했어.

 

하지만 이 책에서 여럿이 어울리는 즐거움을 지금은 모른다고 했는데 아빠는 생각이 틀려.

군중과 어울리다 보면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야. 그래서 특히 군중을 따라가는 일은 조심해야 한단다.

민중이 현명하다고 하지만 작금의 사회 현상을 보면 우둔한 경우가 많아.

물론 이를 판단하는 것이 무척 힘들지.

 

문왕은 백성들의 노역으로 대를 세우고 못을 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두 그것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며 그 대를 영대, 그 못을 영소라 부르면서 그곳에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들이 살고 있음을 즐거워했습니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면 왕은 그들을 억압할 때보다 더 받들여지게 되어있어.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오히려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는 경우가 많지.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경」 편에서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민서, 명서야~ 무언가 잘못되면 늘 너희들로부터 잘못된 점을 찾아야 해. 외부로부터 찾으면 결국 너희 인생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수동적인 삶만이 기다리고 있단다.

 

6.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의 도는 인위적인 것을 피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했어.

따라서 공자의 인 사상과는 반대의 사상을 펼치고 있어.

 

이름도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고 하고 있어.

그러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틀에 갇혀 있는 거야.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노자」라는 책은 인간의 언어로 쓰였는데 이를 뭐라 설명할 것인지 반문하는 의견도 있어.

그러니 사실상 언어를 사용한 가르침 자체가 모순이 되는 거야.

아빠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한다면 인간은 구석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해.

그저 자연의 벌을 받고 자연이 웃어주면 살아나는 무기력한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럼에도 도 사상은 세상의 어느 시간과 공간에 필요한 사상임을 부정할 수는 없어.

 

노자의 백성들은 무지무욕(無知無欲) 사상은 사실상 권력자들의 지배 논리야.

백성들에게 지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닌 밥만 주면 시키는 대로 잘할 거란 거지.

물론, 우리는 절대 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된단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아니겠니.

 

그래도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된다는 사상은 가슴을 울린단다.

바다는 모든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받아들이지.

성인의 경지라 할 수 있어.

아빠도 물과 같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

부딪히면 돌아가고 웅덩이가 나오면 피하지 않고 그곳을 채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완전한 것은 곧은 것이 아니고 굽은 것이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참 훌륭하고 마음에 드는 구절이구나.

아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곧고 뛰어난 기교와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것 등을 할 수 없어서인지도 몰라.

 

7. 장자의 소요

노장사상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장자는 노자와는 다른 노선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해.

장자는 노자를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어.

또한 책에서 나오는 방법도 완전히 다르지.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제1편 「소요유」라고 해.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야.

궁극적인 자유,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있어.

자연적인 것이 천리를 따르는 것이라 했지.

하지만 밭일을 하던 노인이 힘든 밭일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기계를 소개하는 공자의 제자 자공에게 기계의 효율을 생각하면 본성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고 한 말은 억지스러움만이 남을 뿐이야.

우리가 기계에게 인간의 정신을 일부분 빼앗긴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부작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호접지몽(胡蝶之夢)은 나비와 장주, 누가 누구의 꿈을 꾸는 것인지 인상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 있어.

하지만 여기에는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어.

즉,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된다는 것이지.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한다는 말은 고기는 하나의 현상이지만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하고 있어. 

 

8. 묵자와 반전 평화

묵가는 기층민을 대변하는 좌파의 사상을 대변한다고 해.

묵자의 핵심적 사상은 겸애와 반전 평화론이야.

남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여 배려한다면 다툴 일이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아빠의 생각엔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성이 없어 보여.

또한 너무 엄격한 이론과 실행으로 인생의 맛을 잃게 하지.

 

춘추전국시대에 유가와 더불은 묵가는 주요한 사상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2,000년의 세월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일반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보편적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데 이건 고행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수도승의 삶을 강요하니 이루어지기가 어렵지.

우리의 보편적 삶에서 조금 더 실천할 수 있는 사상이 오히려 우리에게 맞지 않을까 싶네.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을 열심히 하고 있어.

자본주의를 대체할 이데올로기는 무엇이 있을까? 부정만이 아닌 대체할 수 있는 사상을 함께 제시했더라면 더 수긍이 갔을 것 같아.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할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는 먼저 유가에서 이단으로 취급을 받았어.

그건 바로 천(天)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즉, 유가와 달리 하늘과 무관하게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다고 본 것이지.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우리 민서, 명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일단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여.

하지만 모두가 이기적인 것은 또 아니야. 

하지만 본성이 악하다, 선하다 판단할 수는 없을 거야.

순자는 이런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교육을 통해 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

 

한비자와 이사가 순자의 문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순자의 사상이 이와 밀접하기 때문일 거야.

순자는 예를 길러서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사회 이론을 펼쳤어.

예에 도덕적인 내용과 법적인 내용을 반영했지.

 

순자가 악론을 전개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자는 법과 제도적 통제가 가져올 폐단을 경계했던 것이지요. 나아가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는 법도 중요하지만 공감 또한 중요시 여겼어.

이는 법과들과는 또 다른 면이란다. 물론, 아빠는 순자의 방식을 더 좋아하고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10. 법가와 천하 통일

유가, 묵가, 도가는 농본적 질서를 이상적 모델로 하고 있지만 이는 복고적 경향을 띄고 있어.

여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 법가야.

법가는 현실에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어.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성을 중시한 거야.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도 불리지만 동문수학한 이사의 권모술수에 걸려 사약을 받고 죽었어. 봉건체제를 물리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에 어울리는 법을 지키고 강화시킨 이사와 상앙이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중형을 받고 죽은 것은 아이러니하구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에서는 효과적 국가 운영책이었지만 치세에서는 어울리는 사상이 아니었어.

인간은 누구나 억압을 견디지 못하면 혁명을 일으키거든.

 

공감이 가는 사실은 유가에서는 귀족이나 대부는 예로 다스리고 평민이나 그 이하 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라고 했는데 이는 평등사상에 위배되는 일은 명백해. 저자가 지적하는 현대에서도 권력자들의 죄는 가볍고 서민들의 죄는 무겁게 내리는 데에는 변함이 없음에 씁쓸함밖에 남지 않아.

 

11. 강의를 마치며

이 장에서는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대해 관계론을 중심으로 짧게 소개하고 있어.

불교가 개인의 해탈 등으로 해체주의에 집착할 때 엘리트들은 사회 혼란의 중심을 잡아줄 사상을 갈구했어.

신유학은 주자가 집대성하여 명과 청의 근본 사상으로 자리 잡아 사회 제도를 확립했어.

하지만 신유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경직되었고 균열을 일으켰어.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했어.

그래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보면 앞, 뒤 꽉 막힌 고집쟁이들로 보이는 것이 이 때문이야.

이들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야.

 

이처럼 어떤 사상이던 사회에 뿌리 깊은 사상이 된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해를 끼치기도 하단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는 절대 선은 없을지도 몰라.

우리가 아무리 옳다고 박수쳐도 후대에서는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으니까.

 

저자는 고전에서 의미하는 여러 사상들을 음미하고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어.

책에 나오는 여러 사상들을 접하며 모두가 다 맞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사상 간 충돌되는 부분도 있었어.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활용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렸다는 이야기야.

 

그중 아빠는 중용의 사상이 세상의 이치란 생각이 들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중심을 잡기가 만만치 않지만 정신 속에서 유념해야겠구나.

 

2024.12.04.수.20:53..... 민서, 명서는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엉뚱한 정치적 무능의 표시인 계엄령이 내려지고 해제된 역사의 오명으로 남을 날에, 사랑하는 아빠가~~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36. 월가의 영웅  (1) 2024.12.08
635. 데미안  (0) 2024.12.06
633. 경제학의 향연  (0) 2024.11.17
632.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  (0) 2024.11.11
631. 팩트풀니스  (0) 2024.11.0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