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리칸드림을 거쳐 이제는 공동체를 위한 유러피언 드림을 펼쳐야 할 때!
◈ 지은이: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 제목: 유러피언 드림
◈ 번역: 이원기
◈ 출판사: 민음사
◈ 출간 연도: 2012.10.11
◈ 원문 출간 연도: 2004.
◈ 페이지: 총 550면
◈ 독서 기간: 2025.04.13 ~2025.05.01
민서, 명서야~~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읽었다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
아마도 우리는 무슨 꿈을 꾸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여러 책을 집필했고 아빠의 독서목록의 몇 권의 책이 있단다.
리프킨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해.
우리 시대의 또 한 명의 석학이시지.
"구세계"에서 얻는 새로운 교훈
리프킨은 미국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념인 아메리칸 드림이 퇴색되어 간다고 했어.
그 이유가 아래 글에 잘 나타나고 있어.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지만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메리칸 드림이 근로 윤리를 높이 사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여가 활동과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선호한다.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의 종교 전통 및 굳건한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철저히 종교와 분리되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동화주의를 표방한다. 미국인들은 이전의 문화 관계를 탈피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자주적 행위자free agent'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미국인들은 중요한 국익으로 인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세계 어디든 병력을 파견하려 한다. 유럽인들은 군사력 사용을 꺼리며, 주로 외교와 경제 원조를 통해 분쟁을 피하려 하고, 치안 확립보다는 평화 유지 작전을 선호한다. 미국인들은 대개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럽에는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사람들에서부터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한 부류가 뒤섞여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철저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복리에 관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복리를 좀 더 중시하게 된다.
위와 같이 마치 세계 중심의 이념처럼 보이던 아메리칸 드림이 이제 세계화의 장애물이 되고 있어.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권태화 되며 동기부여가 없는 것이라는 거야.
우리 민서, 명서만 보더라도 이 넓은 세상을 탐구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더구나.
세상은 알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수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는데 말이야.
미국의 정신인 개척정신은 미국인들을 강인한 독립성을 키워주었어.
즉, 현 사회에서 노력하고 능력이 있다면 부자가 되고 게으르고 능력이 없으면 가난해지는 것이지.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성공과 실패 여부를 오직 개인의 몫으로 여기는 거야.
사실, 사회적 지원이 없다면 성공을 하거나 부자가 되기 힘들어. 그래서 워런 버핏도 자신은 사회적 지원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는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했어.
그동안 늘 미국에 뒤쳐진다고 여겨졌던 유렵연합은 여러 부분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있어.
이 책이 쓰인 시점에서 현재의 상황이 궁금하구나.
오직 GDP로만 비교하던 시절에서 이제 부정적 사회 비용을 빼고 비교를 해야 한다고 리프킨은 주장하고 있어.
그렇다면 유럽의 GDP가 미국보다 많이 높다고 하지.
옛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누구나 가난을 딛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새 유러피언 드림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삶의 질 증진을 강조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개인의 기회를 중시한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민서, 명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니, 아니면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니?
양 쪽에 장, 단점이 있지만 초점을 어디에 맞추냐에 따라 인생은 상당히 달라진단다.
"현대"의 형성
공간과 시간의 개념은 오래전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왔어.
공간과 시간의 확장된 의미는 기술과 상업의 발전을 통해 합리적, 실용적, 과학적 시대의 발판을 마련했어.
18세기 종교 박해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 간 청교도들은 이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효율성에 집중시켰어.
예전에 읽었던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내용에서 하느님의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는 인내와 노력으로 성공했을 때야.
그러니 미국인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여 거대한 발전을 이룩할 수가 있었어.
하지만 이 효율성이 이제는 삶의 질을 낮추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어.
유럽인들은 사랑과 소속감 등에서 효율성을 추구할 수 없다며 효율성을 그저 보조적 장치라고 했어.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미국인들에게 행복이란 개인적 성취, 물질적 성공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행복은 서로 간의 돈독한 관계 및 공동체 유대감과 결부되어 있다. 나의 유럽인 친구들은 긴밀한 대인 관계와 결속감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와 사회 결속감은 시계나 효율성 원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사유 재산의 개념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는 늘 기득권과의 전쟁이었어.
이런 충돌 속에서 지속적으로 합의점을 찾아온 거지.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개척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기득권이 없었어. 따라서 오직 자유를 통한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하고 신화로 받아들여졌지. 문제는 현재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민족국가는 위태해졌다는 거야.
바야흐로 변신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
다가오는 글로벌 시대
리프킨은 전통적 시장경제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이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신뢰와 협력적 상호관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어. 또다시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바뀌어 버린 것이야.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며 서로 발전하는 관계의 시대가 됐어.
부족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홉스/다윈식 논리는 협력이 생존과 발전에 더 중요하다는 혁명적인 발상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정의하는 데는 과연 어떤 여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성공적인 인생이란 재산의 축적양에 비례되는 것이 아니고 소속감, 즉 삶의 질에 따라 다르다고 했어.
사회는 더욱 삭막해지며 느슨한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는 것이지. 넓은 관계보다는 깊은 관계가 필요한 때야.
유럽은 장 모네의 주도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 출발했어.
하지만 영토를 주력으로 하는 민족국가들의 주권을 조금씩 양보하며 유럽공동체의 권한은 점점 강해져 왔고 지금은 국가의 주권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EU는 강해졌단다. 즉, EU는 영토와는 상관없이 국가에 해당하는 권한을 가졌어.
이렇게 된 배경은 유럽의 상황이 전쟁으로 경제위기로 피폐화되었기 때문이야.
서로 평화적 공존이 절실했던 거야.
EU는 영토를 기반으로 한 국가와는 다르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소수의 권력자가 다스리는 방식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와 또 EU와 협상을 벌이며 이익을 위해 소통할 수 있어.
다양성 속의 질서를 찾는 것이지.
공간과 시간의 개념적 축소로 과정이 중요해진 거야.
아빠는 이런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점은 훌륭하지만 개개인의 이기주의적 자세로 인해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다른 이들의 이익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갈구하는 상태 말이야.
이런 네트워크가 잘 흘러가려면 다른 이들의 이익을 인정해줘야 하는 점이 기본으로 탄탄해야 해.
과연 게임이론에서도 보여주지만 과연 인간의 이기심이 먹잇감을 그냥 놔둘 수 있을까?
민족국가 시대의 정치는 시장과 정부라는 축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Eu는 상거래, 정부, 시민사회라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어. 시민사회기구(CSO)는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 쿠션 역할을 하고 있지.
CSO의 목표는 부의 축적이 아닌 사회 결속과 복지야.
유럽이 당면한 진정한 도전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을 특정 민족에서 보편적인 인류 전체로, 지방에서 세계로 넓힐 수 있는지 여부다.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정치체제를 갖추는 일은 가능할까?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였다. 미국에 정착한 대다수 이민자들은 미래의 보상을 위해 과거를 잊고 현재를 희생했다.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그보다 훨씬 야심적이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현재 이 순간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가까운 미래에 존속 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싶어 한다.
유러피언 드림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핵심은 공감이야. 타인의 처지나 상황을 공감해야 상호 연결성을 가질 수 있어. 즉 네트워크는 상호작용을 근본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보편적 인권을 가지는 거야. 아빠의 개인적 생각은 요즘의 사태를 보면 예전보다 공감 능력이 훨씬 더 떨어지는 것 같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 사회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하고픈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여.
아빠가 일하는 회사에서 보아도 그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급급하지 동료에 대한 공감 능력, 즉 메타인지는 무척 낮아.
이런 인간적 매력이 사라지는 이때에 유러피언 드림은 가능할까??
보편적 인권에서 사형 제도를 혐오하고 군사면에서도 자주국방을 이루려는 EU는 여러모로 미국과는 달라 보여.
현재도 미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패권주의를 이루려 하고 있어.
다윈의 진화설을 거부하며 현대의 생태학 개념이 유러피언 드림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다윈의 진화론 모델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려는 개체들 사이의 투쟁에 중점을 두었지만 생태학은 그 개념을 반박했다. 생태학의 모델에 따르면 자연은 수많은 공생 관계로 이루어지며, 각 유기체의 운명은 경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다윈의 생물학이 개체와 종에 치중하면서 환경을 자원의 배경으로만 격하시킨 반면, 생태학은 환경을 각 개체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하는 전체로 본다.
동물의 권리에 있어서도 인간중심적인 아메리칸 드림과는 달리 유러피언 드림은 보편적 인권에 동물과 자연도 포함시키고 있어.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자연과 연결되고 이는 시스템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해.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고 했어.
동아시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지만 현 상황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중국은 세계 패권을 잡으려 탐욕적이 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보복 무역을 지속하고 있어.
과연 이런 상황에서 EU와 같은 공동체가 성립이 될까?
결국, 유러피언 드림은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전체주의의 가장 균형이 잘 맞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게 숙제야.
그렇게 된다면 개인과 전체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평화 공존의 세계가 펼쳐지는 거야.
이런 세상이 유럽에서 먼저 올 예정이라니 부럽기만 하구나...
유러피언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2025.05.01. 목... 민서는 댄스 연습하러 갔고 명서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며.... 비가 오는 5월의 첫날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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