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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서울대 인문고전 27- 프린키피아(뉴턴)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15. 11. 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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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린키피아(뉴턴)

글: 송은영

그림: 홍소진

독서기간: 2015.11.16~11.17

 

민서, 명서야... 오늘은 떨어지는 사과로 중력을 발견한 뉴턴이 쓴 《프린키피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

사실 아빠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는데 나중에 과학을 공부하니 너무 따분하고 어려워서 과학을 포기했었지... 그런데 지금 쉽게 풀어놓은 이 책을 보니 너무 재미있네. 고등학교에서 역시 물리는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아빠가 무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학교에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는 게 아니고 딱딱한 내용으로만 수업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에 대해 어려워하고 따분해하는 것 아닐까?

 

이제 뉴턴에 대해 좀 알아볼까? 1642년 근대 과학의 문을 연 물리학자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났어. 같은 해에 뉴턴이 태어났단다. 뉴턴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어. 뉴턴의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돌아가셨고 뉴턴은 홀어머니와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어. 뉴턴은 세 살 때 어머니가 나인 든 목사와 재혼했거든. 어머니는 양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살았고, 뉴턴은 외가에 맡겨졌지. 민서, 명서야... 친 부모와 자라지 못하는 건 정말 큰 불행일 거야. 아빠도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와 얼마간 산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으로는 아무리 할머니랑 같이 살지만 늘 엄마를 그리워하고 울곤 했던 기억이 난단다. 어린 뉴턴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해. 게다가 뉴턴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 혼자서 생각하는 걸 즐겼지.

세월이 흘러 1661년에 뉴턴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 합격했어. 뉴턴은 대학 연구원과 부자 학생들의 심부름을 해 주고 등록금을 벌었다는구나. 뉴턴의 집안이 가난해서 그랬던 건 아니래. 뉴턴의 어머니는 굉장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하인을 두고 살 정도의 재력은 있었지. 하지만 뉴턴의 어머니는 아들이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길 바랐어. 그래서 학비를 보내 주지 않았던 거야. 만약 뉴턴이 어머니의 뜻대로 했다면 근대 과학의 발전은 더뎌졌을 거야. 뉴턴은 대학에서 돈놀이도 했고 또 열렬한 독서광이기도 했다고 해. 1665년 봄,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어. 그러고는 케임브리지 대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지. 그런데 그해 9월, 런던에 페스트가 발생했어. 1666년은 뉴턴이 흑사병을 피해 고향 집에 내려온 다음 해야. 많은 위인이 그랬듯이 이렇게 시련이나 뭔가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을 때 큰 발견을 하거나 내면이 엄청나게 성장했던 것처럼, 어느 날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데 사과가 '톡' 하며 떨어졌지. 순간 뉴턴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고 거기서 중력을 발견했고 이런 생각 속에서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이야. 뉴턴은 고향 집에 머무는 동안 미분, 적분학도 알아냈어. 미분, 적분을 모르고는 물리학은 물론, 현대 수학과 공학을 배울 수가 없어. 뉴턴은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했지만 라이프니츠와 미분, 적분학의 우선권을 놓고 벌인 싸움이라든가, 빛과 색깔에 관한 논쟁, 여러 가지 과학적 이론과 원리를 놓고 로버트 훅과 사사건건 시비가 붙은 일 등에 지쳐갔어. 날이 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놀랄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해도 굳이 세상에 드러내거나 발표하려 들지 않았어.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핼리의 방문을 받았던 거야. 그러고는 1687년 드디어 《프린키피아》를 출간했지.  그런데 뉴턴의 말년은 과학적인 연구와는 다소 동떨어진 삶이었어. 1696년에 왕립 조폐국 부국장, 1699년에는 왕립 조폐국장이 되었거든. 《프린키피아》에 이어 《광학》을 출판함으로써 어두운 시대의 잘못된 과학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 1705년 영국의 앤 여왕은 뉴턴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어. 과학자로서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은 뉴턴이 처음이었지. 세월이 흘러, 1727년 뉴턴은 콩팥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어. 그러고는 1727년 3월 20일 결국 세상을 떠났지. 같은 해 뉴턴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어. 뉴턴이 유언으로 남긴 다음의 말은 뉴턴만큼이나 유명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나는 모른다. 나 자신에게 비춰진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소년일 뿐이다.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나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가끔씩 자그마한 돌과 예쁜 조개를 찾으며 즐거워했을 뿐이다"

 

민서, 명서야 마지막 유언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니? 마치 놀이하듯이 진리를 발견했다는 겸손한 표현이야. 이 말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놀이하듯이 즐기면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야. 우리 민서, 명서도 너희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놀이하듯이 즐겼으면 좋겠다. 비록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문가가 되지 못할 지라도 말이야...

 

뉴턴이 발견한 유명한 3가지 법칙이 있어. 그것은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있어. 아빠가 많은 고전을 읽으면서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은데 뉴턴도 정말 천재 중에 천재인 거 같아. 뉴턴은 어떻게 힘은 가속도 곱하기 질량이라는 걸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아빠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ㅎㅎ

그러면서 뉴턴은 회전하면서 안으로 잡아당기는 힘인 구심력에 대해 생각해 내고 우주에서 대부분의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만유인력에 대해 생각해 냈어. 만유인력에 대해서도 대충 법칙을 만든 것이 아니고 정말 세세하게 연구해 냈어. 지구의 중력과 거리의 관계라든가 지구는 만유인력과 원심력으로 인해 타원형이라는 것이라든가 등등 말이야. 아빠가 지금 읽어도 신기한 게 너무 많았어. 아빠가 너무 무식했나? ㅎㅎ 아무튼 이 책으로 인해 아빠는 지구과학과 물리학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완벽할 거만 같았던 뉴턴의 이론도 아인슈타인에 의해 수정이 되었단다. 그건 그 당시 과학을 뒷받침해주는 인프라 및 인식의 부족으로 인한 걸 거야. 아빠가 생각하기에 뉴턴이 아인슈타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아인슈타인만큼이나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복잡하게만 보이는 조석에 대해서도 명쾌한 설명을 한단다. 중력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구 상의 모든 물체를 떨어뜨리는 힘인 중력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그리고 이 힘은 영원히 계속될까? 란 의문이 생기는구나. 혹시 만약 중력이 점점 약해진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우주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이 더욱 많이 생겼단다. 물론 자세한 공식이 나오지 않아 머리는 덜 아팠지만 말이야.. 민서, 명서야... 아빠도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아빠와 함께 거대한 진리의 바닷가에서 한번 놀아 볼까? 생각만 해도 신난다^^

 

2015년  11월 18일 21:32... 민서, 명서는 구구단을 외우고 있을 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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