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삼민주의(쑨원)
글: 곽은우
그림:조명원
독서기간: 2016.01.08~01.10
민서, 명서야... 오늘은 중국 근대 민족의 아버지라 불리는 쑨원이 제창한 《삼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쑨원은 1866년 11월 중국 동남부 해안의 광저우성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향산현에서 태어났어. 쑨원의 집안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어.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다섯 집 가운데 하나였다고 해. 아버지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이웃 마을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녀야 했어. 일주일 단위로 받는 주급으로 근근이 어려운 살림을 꾸려야 했고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했어. 물론 다른 가족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서 살림은 조금씩 불어났어. 살림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다섯째로 태어난 쑨원은 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해.
그러던 어느 날 쑨원의 큰형은 하와이 설탕 농장 노동자였던 외삼촌을 따라 하와이로 가려고 했어. 큰형은 쑨원에게 학문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자가 되라고 하지. 형의 당부도 있었지만, 쑨원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고 총명하여 중국 고전을 공부하고 전통을 익히며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어. 하와이로 건너간 큰형은 성실함과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성공했어. 큰형이 결혼하기 위해 중국에 돌아왔을 때 쑨원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형은 하와이로 되돌아갈 때 쑨원을 데리고 갔어. 쑨원은 하와이에서 서구의 근대식 교육을 제대로 받음으로써 중국이 겪어야 할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어. 중국말밖에 할 줄 모르던 쑨원은 학교 생활에서 궁지에 몰리기도 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식 때는 영어문법 과목에서 전교 2등이라는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 하지만 큰형은 중국 정통 유학에서 배척하던 기독교에 쑨원이 관심을 보이고 세례를 받으려 하자 쑨원을 중국으로 귀향시켜 버렸지. 고향에서 홍콩으로 건너간 쑨원은 의학공부를 시작했고 성공적으로 의사면허를 받았어. 하지만 당시 홍콩에서는 근대교육을 받은 의사면허증으로는 한의학 의사를 할 수 없었어. 나이 서른이 다 될 때까지 쑨원은 의료계에서 큰 명성을 얻을 수 없었다고 해. 그리고는 중국 스스로 근대화를 통해 국력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쑨원은 광저우에서 일어난 봉기가 몇 달째 지속되자 혁명운동가들과 광저우에서 대규모 공격을 계획하지만 실패한단다. 간신히 포위망에서 벗어난 쑨원은 홍콩, 일본, 미국, 영국으로 도망 다녀야 했고 런던에서 중국 공사관에 잡히기도 했어.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쑨원을 석방하도록 강력히 요청하여 풀려나게 되지.
중국 내륙에서 삼민주의를 내세우던 쑨원은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수십 년 동안의 외국생활을 접고 조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돼. 그리고 혁명을 이끈 무리들은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추대하였고, 1912년 중화민국의 성립을 선포했어. 민족, 민권, 민생에 맞는 이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중화민국은 총통을 선출하는데, 임시 대총통이었던 쑨원은, 당시 독립된 군사력을 갖고 있던 권력자 위안스카이에게 총통 자리를 양보하게 돼.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정국을 안정시키기는커녕 혁명파들을 탄압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독재 정치를 하여 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어. 쑨원은 혁명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정당들을 통합하여 '국민당'을 창립했어. 갑작스레 위안스카이가 사망하고 각지의 군벌 세력들은 국가 위기에 아랑곳없이 이권 다툼을 벌이며 다시 중국은 혼란의 정국 속으로 빠져든단다. 이때 지식인들이 앞장서 신문화 운동을 했고 이러한 의식 변화가 확산되어 가다가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5천 명의 대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게 돼. 쑨원은 군사 정부를 광저우에 세우고 세력을 강화한 후, 지역 군벌 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치르게 돼. 그리고 제1차 국공합작으로 군벌 세력과 제국주의에 대항했지. 1925년 간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쑨원은 군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많은 투쟁을 계속했어. 그래서 쑨원은 죽는 순간에도 자신이 못다 이룬 미완의 혁명을 매우 안타까워했단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로지 혁명을 위해 살다가 '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그의 생애는 죽고 나서 더욱 관심을 받았어.
쑨원이 시작한 삼민주의는 중국인 한 사람에게서 나온 이론이지만, 전 세계의 다양한 이론과 경향을 연구하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하도록 중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이론으로 바꾸어 체계화시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해. 쑨원은 청소년기와 20대 때 외국에 나가 공부할 때나, 또 어른이 된 뒤에도 언제나 중국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나라의 이론이 아닌 중국 고유의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중국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중국이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연구한 끝에 나온 결론이 삼민주의인 거야.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믿고 따를만한 이념이 부족했던 거 같아. 사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역사를 살펴보면 독립운동가끼리도 많이 싸웠다는 것이 아쉬워. 그들은 대한민국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왜 싸웠을까? 아빠 생각으로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 같아. 결국 대의를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한 것이겠지. 그런 결과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나라는 더욱 엉망이었어. 참, 아쉬운 부분이야....
쑨원의 삼민주의란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야. 먼저 민족주의는 중국은 각 지방마다 왕과 같은 권력을 갖는 영주가 있었고 각 지방끼리의 단합은 잘 되었지만 중국 전체가 민족 단합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사람은 없었지. 하지만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대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동아시아에서 경제 이권을 자꾸 침탈하려 하자 중국의 단결된 힘이 더욱 거세게 요구되었던 거야. 하지만 만주족의 통치로 인하여 민족이 단합된 힘을 갖기란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웠지. 결국, 다른 나라의 침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족이 단합하여 민족 스스로 살아 나갈 수 있는 금융, 산업 등의 경제가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민족의 것을 사용하고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면 부강한 중국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지.
그다음 민권주의야. 쑨원은 왕 한 사람이 국가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 중국은 당시 국왕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권력 다툼을 벌이고 백성을 돌보지 않는 풍토가 있었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믿었지. 그래서 주창한 것이 민권주의야. 즉 모든 국민에게 정치 권력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백성에 의해 뽑힌 사람들이 의회 등을 통하여 정책을 의논하는 공화제를 중국에 도입해야 한다고 했지. 쑨원은 이 민권주의를 주장하면서 청 왕조의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어. 나라의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쑨원의 마음이 참 존경스럽구나. 이 아빠도 그런 강한 마음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구나. 이건 선천적일까, 아님 후천적으로 가질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 아빠는 늘 아빠의 약점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마지막으로 민생주의야. 민생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지. 민생은 어떻게 하면 소득을 늘리고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핵심이야.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민생주의에서는 경제를 부흥시키고 산업을 발전시켜서 잘 살자는 것 이외에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빌려 와서, 토지의 공산화를 주장했다는 점이야. 그렇기 때문에 삼민주의는 공산당으로부터도, 국민당으로부터도 각광을 받았던 것이라고 해.
근본적으로 토지는 빈부격차의 원인을 제공한단다. 땅값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에 따라 땅이 없는 사람들과 빈부격차가 심해지지. 토지의 상승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자고 한 것이 공산주의야. 퓨전 공산주의라고 할까... 아빠도 만약 아빠가 큰 부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를 간간히 생각한단다. 한 가지 아이디어는 고아들을 교육을 잘 시켜 성공시켜서 그들이 자신과 같은 고아를 돌보게 하는 것인데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는 장담할 수 없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은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지.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지금까지의 모든 이념을 생각해 보건데 가난한 사람을 없앨 수 있는 이념은 현재까지는 없단다. 어쩌면 그건 이상주의일 수도 있어. 하지만 누군가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하더라도 끊임없이 그 방법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 행복일 수 있어. 가끔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아름다울 때가 있는 법이란다.
2016.01.11.... 01:56.... 아빠는 퇴근 후.. 너희들은 코~잘 때... 아빠도 피곤하구나... 좋은 꿈 꾸고 있기를... 사랑한다 우리 아가들~~
54. 서울대 인문고전 35-한비자(한비자) (0) | 2016.01.16 |
---|---|
53. 여행처방전 (0) | 2016.01.13 |
51. 당신에게,여행 (0) | 2016.01.09 |
50.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33-삼국유사(일연) (0) | 2016.01.07 |
49. 중국에는 왜 갔어? (0) | 201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