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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뒷굽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0. 3. 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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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뒷굽

: 허형만

독서기간: 2020.03.05~2020.03.06

 

민서, 명서야~~ 오늘은 오랜만에 시집을 읽기 시작했어. 아빠의 마음이 요즘 너무 메말라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현시점에서 알맞은 책이네^^. 요즘 아빠가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피곤하구나. 그럼, 우리 함께 생각의 나래를 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볼까?

 

뒷굽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 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 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아빠도 이 시를 읽고 갑자기 궁금해졌어. 그러면서 아빠 생각의 방향이, 행동이, 습관이, 말투, 인생이 모두 기울어졌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기울어지면 또 어떤가란 생각도 들고. 어차피 우리는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겨울 들판을 거닐며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겠어. 가까이 다가가서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동안 아빠는 지레짐작으로 많은 것을 멋대로 생각해 왔어. 특히,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 서로 간의 상처가 커질 수 있단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해. 그냥 어설픈 이해는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독이 된단다.

 

녹을 닦으며

 

새로이 이사를 와서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흑갈빛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지나온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을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몰랐다

나는,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을 보았다

비늘처럼 총총히 돋쳐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 그것은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

그리 살아온

마흔 세 해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노을 앞에서 바람 앞에서

철없이 울먹였던 뽀오얀 사랑까지

바로 내 영혼 깊숙이

칙칙하게 녹이 되어 슬어 있음을 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녹을 닦으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이자 철학자이구나.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능력, 바로 펜의 힘이지. 아빠의 마음속에도 두꺼운 녹이 슬어 있을 거야. 어릴 적의 순수하고 꿈꾸던 밝은 소년이 어느새 웃지 않고 힘들어 보이는 중년으로 변했구나. 결코 이런 모습이 아빠가 꿈꾸던 삶은 아니란다. 그런데 왜 아빠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건 더욱 많은 것을 움켜쥐려는 욕심 때문이겠지...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면 뒷동산에 올라 십리길 장에 가신 어머닐 기다렸지 저 멀리 저수지 둑길로 어머니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초저녁 물안개만 스물스물 피어올랐지 어머니 어머니는 오시지 않고 초저녁 별들만 듬성듬성 돋고 있었지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은 아빠도 잘 알고 있어. 아빠가 8살쯤이었을 때 할머니는 일을 끝내고 고단한 모습으로 늦게 오셨었어. 아빠는 집 앞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그런 할머니를 기다리던 생각이 나는구나. 골목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엄마가 아닌가 하고 고개를 들며 간절히 기다렸었어.


산(山) 하나
어스름 저녁빈 들판 한가운데 산 하나 있었다.
몹시도 흔들거리는 기차 신문 한 장 다 읽고 다시 쳐다본 차창 밖으로 산 하나 그대로 있었다.
산은 말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여니 그 산이 빈 들판 한가운데 그 산이
나보다 먼저 와 웅크리고 있었다. 불씨를 지피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도 언젠가 산과 바다를 향해 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고 있어.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삶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구나...
작가님의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로 시를 쓰고 싶다'라고 한 말은 누구에게나 영혼을 쏟는 일에 해당되는 말이야. 아빠는 무엇이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로 하고 싶을까? 과연 있을까?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뚜렷이 영혼을 쏟으며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사람의 인생은 모두 제 각각이어서 그냥 이렇게 그렇게 스스로 자신이 찾으려고 시도한 만큼 삶을 깨닫다가 가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고 또 바쁘고 정신없어 혼 마저 어디 있는지 모르게 살아가는 시간에 경종을 울리는 것도 같구나...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2020.03.09.... 민서, 명서는 아직도 쿨쿨... 좀 일찍 자면 안 되겠니? ㅠㅠ....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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