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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시를 어루만지다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1. 3. 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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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를 어루만지다

편저: 김사인

독서기간: 2021.03.02~2021.03.05

 

민서, 명서야~~ 오늘은 오랜만에 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아빠 회사의 한 신입사원이 1년 뒤 정규직이 되어서 그 부모님이 감사의 뜻으로 주신 책이야. 그런데 책 앞장에 뜻깊은 시와 감사의 인사를 남기셨는데 그 글을 읽고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회사에 감사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 감동을 받아서 아래 시와 글을 써 볼게.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 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린 눈발처럼 서툴기만 한 XX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XX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곳곳에 살얼음을 깔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드립니다.

 

민서, 명서야~ 위 글을 읽어보니 부모님의 끈적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니? 아빠도 이런 끈적한 사랑을 너희들에게 많이 많이 줄게. ㅎㅎ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저자가 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는 거야. 아빠는 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난해한 시를 읽으면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시를 풀이한 글을 읽으면 감동이 더해진다는 거야.

저자는 시란 일상적인 말로 영혼조차 맑아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 했어.

시를 대하는 자세로는 1. 겸허와 공경, 2. 공감과 일치의 능력, 3. 시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

 

墨畵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할머니와 소의 고단한 하루 속에 느껴지는 둘 만의 정이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어.

 

관계

   박두규

 

나는불행하게도 이 순간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다

한 떼의 구름이 도심을 빠져나가는 이 시간에도

남태평양 깊은 해류를 타고 고래들은 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리산 작은세개골 두릅나무엔 새순이 올라오고

갈기를 세운 말들이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거리를 걸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나의 오만을

그 오만으로 가득 찬 내 어둠 속 내장들을

태평양의 고래나 두릅나무 어린 새순들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종일토록 초원을 달려도 그 끝에 이르지 못하고

거친 숨만 토해야 하는 말 한 마리의 그 깊은 절망을

나는 알고 있단 말인가

알고 있다 말의 절망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의 오만과 그대의 절망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다

길가의 코스모스도, 꽃을 흔들고 가는 바람도

지하 수백 미터 암반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모두

너와 나의 관계와 관계를 가지고 처음부터 동참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불행도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남태평양의 해류를 타고 이동 중인 고래의 불행이다

지리산 두릅나무의 불행이다

 

우리는 남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 듯 하지만 지구의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단다. 인간의 도덕, 윤리가 풍요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효자가 될라 카머

-김선굉 시인의 말

      이종문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대로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부모님들은 늘 자식들이 5살 어린이로 생각하시고 '차 조심해라, 양 옆 잘 살펴보고 길 건너라'라고 이야기하셔. 저자의 말은 부모 앞에서는 점잔 뺄 필요 없고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 효자라고 했는데 아빠도 전적으로 공감한단다. 아빠도 할머니 앞에서 왠지 쑥스러워 점잔은 척하고 있는데 말이야. ㅎㅎ

 

참 좋은 저녁이야

      김남호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유서를 쓰는 참담한 심정이 아닌 경쾌한 분위기의 시야. 아빠도 죽는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세상에 나온 마지막 목표야. 이 시는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아주 유쾌하게 표현을 해서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진단다. 우리 민서, 명서도 아빠가 죽으면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딱 3일만 슬퍼하고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 나가길 바라.

 

이 책에는 철학을 담은 시도, 인생을 담은 시도, 장난을 담은 시 등 다양한 장르의 시가 있는데 저자께서 설명을 해 주시니 시에 대한 문외한인 아빠에게는 시를 좋아할 사다리를 펼쳐주신 거야.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 없이 시를 대하면 가슴에 와닿지 않아 그냥 어렵기만 하고 기괴하기만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아빠를 시의 세계로 조금씩 빨아들였어. 가끔 이런 시집을 읽는 것이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기만 하네.

 

2021.03.05.20:46.... 민서는 자기 방에서 아마 책(아빠가 읽으라는)을 읽고(?) 명서는 닌텐도에 빠져 있을 때... 우리 민서, 명서가 잘 커나가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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