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글: 줄리언 반스
번역: 공진호
독서기간: 2021.03.20~2021.03.27
민서, 명서야~ 오늘은 그림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그림은 자체보다 작가가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그렸는지, 그림은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보아야 잘 이해할 수 있어. 이런 것에 따라 그림의 가치가 아주 틀리단다. 우리 민서도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보기 좋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껍데기만 잘 포장하는 거야. 너의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며 포함하는지를 잘 나타내야 해. 영혼을 담은 그림이랄까...
예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품을 수 있어.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재난 뒤에도 늘 예술이 뒤따른다는 것이 맞아. 책으로, 영화로, 그림으로, 연극으로 상영이 되니까.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어. 그림의 배경을 먼저 알고 그림을 본다면 인간사의 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생길 거야.
예술가로서의 자존심도 각각 남다르단다. 쿠르베처럼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조물주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거만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야. 예술가의 특성이 예민함이니 이런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할까? 겸손함이 없는 사람은 늘 공격받게 마련이지만 또 이를 즐기는 예술가들이 있단다. 아빠는 이런 까탈스러움이 예술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자만심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날린 각각의 예술가들은 정신세계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느낄 수 있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는데 이들의 사후에 후세의 사람들은 같은 그림을 보며 각각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 또 매력이란다. 진실은 무덤 속에 주인공과 함께 있으니...
사과를 정말 열심히 그린 세잔은 사물이나 사람의 모습에서 영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다, 몸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은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아빠는 겉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배치되는 위 문장에 좀 혼란스러웠어. 과연 정신만을 강조하는 게 중요할까? 갑자기 니체가 이성을 이야기할 때 신체를 이용하지 말고 말해보라고 한 것이 기억났어. 신체는 영혼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민서, 명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르동도 아빠에게 깨우침을 주었단다. 물론, 깨우침을 얻고 잊어버리고 말지만...ㅎㅎ
'미술은 오직 "소재를 뛰어넘거나 환하게 밝힘으로써, 혹은 증폭시킴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신비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르동은 주장했다.'
미술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가지 소재로부터 연관시키며 범위를 넓히는 사고는 무척 중요해. 여기에 예술적, 기술적, 영혼적인 것이 망라되어 있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
보나르는 마르트 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했는데 왜 그토록 마르트만을 그렇게 그렸을까? 마르트가 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서일까? 후대의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그림을 그릴 당시 시대 배경과 화가 개인의 상황, 심리적 상태를 추론하며 그림을 이해하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추론이 틀린다 해도 그림은 바뀌지 않았을 거야.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한단다. 화가 개인의 모든 것을 다 연구해도 정확하게 그림이 말하는 화가의 심리적 상태를 알 수 있을까?
파티의 주인공이 되려고 안달이 난 쿠르베도 있지만 주변을 맴돌며 관조적인 자세로 살아간 뷔야르 같은 화가도 있어. 이런 점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특정한 성격이나 성향은 없다는 거야. 그리고 흔히 말하는 헝그리 정신은 예술의 더 높은 세계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아. 스위스인 발로통은 부자와 결혼하지만 이런 상황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는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 우리도 배부르고 따뜻하면 만사가 귀찮지는 것처럼......
브라크는 피카소와 입체파 초기 멤버였어. 하지만 나중에 둘 사이는 완전히 갈라졌지. 둘은 성격도 무척이나 달랐어. 브라크는 도덕성을 강조한 반면 피카소는 자신의 홍보에 열을 올렸어. 저자의 글에서 피카소를 싫어하는 것이 느껴지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치안 프로이트는 할아버지의 환자인 것처럼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은 것 같아. 늘 지배자처럼 행동한 그는 난잡한 여자관계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나. 프로이트에 대해 읽으면서 과연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서는 중범죄에 해당되는데 과거라서 그냥 그런 거라고 넘겨야 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어. 또 우리의 후손은 현재 우리가 용납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죄명을 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그저 도덕성의 문제일 뿐! 어쨌든 프로이트의 성격은 아빠가 너무 싫어하는 유형이고 아무리 세상에 공헌한 사람이라도 존경심이 전혀 생기지 않는구나.
'이것은 예술인가?' 부분에서는 아래와 같은 중요한 의견이 있어.
'100년 전에 조각상에 칠을 하고 주물을 만들어 조소를 뜨고 장식하고 치장했던 폴리셰를 비롯한 잊힌 장인들에게 예술적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사실상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예술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 있다면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정의에 가깝네. 아빠도 그림을 보는 심미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는데, 결국 그 길은 그림을 많이 보고 생각해 보는 수밖에 다른 지름길은 없는 듯하구나. 저자의 미술에 대한 '사적인 의견'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그에게 동의 또는 미동의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단다. 물론 미술에 대한 감각이나 지식이 있어야 하지. ㅠㅠ
2021.03.27.21:55.... 민서는 자기 방에서 무엇을 할까? 명서는 하루 종일 태블릿을 보고 있다는 ㅠㅠ... 너희들이 언제 너희들 바보로 만드는 기계에게 속았다고 깨달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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