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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 그림과 함께 읽는 로마 제국 쇠망사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21. 6. 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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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림과 함께 읽는 로마 제국 쇠망사

글: 에드워드 기번

편집: 데로 손더스

번역: 황건

독서기간: 2021.06.16~2021.06.16

 

민서, 명서야~~ 오늘은 안정적이고 광대한 제국인 로마의 쇠망사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이 책을 쓴 에드워드 기번은 18세기 사람으로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어. 그는 부유한 집에서 일곱 명의 형제, 자매 중 맏이였는데 아래 6명이 모두 일찍 죽었다고 하는구나. 아담 스미스와도 친구였고 유명한 문학회 회원이었던 것을 보면 글 쓰는 재주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 프랑스 목사의 딸과 결혼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좀 아쉽구나. 글 쓰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특히 결혼과 아이 육아는 즐거움, 고통, 짜증, 환희 등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냈을 텐데 말이야. 

 

로마 제국의 초창기에는 영토를 넓히는 데 집중했다면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더 이상의 넓은 영토를 운영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유언으로 자연의 경계에 따라 제국을 관리하라고 했어.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를 어기고 다키아 원정으로 영토를 넓혔지만 이후 황제들은 광대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는데 치중했어.

기원 후 100년의 우리 나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로마 제국은 굉장히 선진화된 문명 속에 있었어. 그래서 야만인들은 로마인들을 존경하며 이들의 언어, 문화, 종교를 받아들였어. 하지만 소아시아와 이집트 등은 이런 로마의 문화를 거부했어. 이는 아마도 소아시아와 이집트에 발전된 언어와 문화 등이 있었기 때문일 거야.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처럼 일생을 로마 제국의 전역을 다니면서 통치를 강화한 황제가 있다면 로마 안에서만 있었던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같은 황제도 있었지.

어떤 목적으로 일을 할 때도 각자 성향에 따라 과정이 틀리단다. 문제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느냐야. 너희들도 남들과 꼭 같은 방법으로 한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할 필요는 없어.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시대를 혁신하는 것이니까.

 

로마 제국이 정말 잘했던 일은 속주민들을 로마의 시민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야. 아시아의 제국주의처럼 점령한 국가의 시민을 짓밟기만 한 것은 더욱 강한 반발만 일으켰지만 로마 속주민들은 로마의 시민이 되려 노력했다는 거야. 이는 국가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었어. 속주민들의 관습이나 종교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로마의 보호하에 있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임은 분명했을 테니까.

 

'동시대인의 눈에는 이와 같은 대중적 행복 속에 잠재한 쇠퇴와 부패의 원인들이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오랫동안의 평화와 로마의 획일적 통치는 제국의 중추 부문에 서서히 그리고 은밀하게 독을 퍼뜨렸다. 사람들의 정신은 점차 평준화되고 번뜩이는 천재성은 소멸되고 심지어 상무정신도 사라져 갔다.'

 

회사도 그렇고 개인도 모든 것이 잘 풀릴 때가 정점이라고 생각해야 해. 내리막길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 풍요로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래로 아래로 잡아 이끈단다.

 

전에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온 왕들의 묘사와 기번이 쓴 이미지가 좀 틀리는구나. 시오노 나나미는 티베리우스를 로마의 재정 건전을 위해 무척 절약하며 나라를 운영했다고 나오는데 기번은 '음험하고 가혹한 티베리우스'로 나오는구나. 말년에 공포정치를 한 모양이기도 하고.

 

'사회의 평온을 교란시키는 대부분의 범죄는 많은 사람이 탐내는 재산을 소수에게 한정시키는 불평등한 재산법 상의 제약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기번은 사회의 타락과 불공평을 날카롭게 지적했어. 결국 현시대에서도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으로 절망하고 있으니까...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는 왜 잔인한 자신의 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을까? 그처럼 현명한 철인이 왜 나라보다 혈육을 중시했는지 그의 마음이 궁금하구나. 다른 현제들과 같이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이에게 황위를 넘겨주었을 지혜는 있었을 텐데 말이야.

 

기번이 말한 다음의 문구는 어떤 역사책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불완전하고 간략하며 더구나 모호하고 서로 모순되는 단편적 자료들에 둘러싸인 역사가들로서는 이런 것들을 수집, 비교하여 추측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설사 이런 추측을 사실의 수준에 올려놓지는 못하더라도, 때로는 인간성을 이해하고 또한 그 강렬하고 무제한적인 정열의 확실한 작용을 이해함으로써 자료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로마는 황제 암살이라는 유행(?)이 펼쳐져. 쿠데타로 황제직을 찬탈하고 같은 방식으로 몰락하고... 군인들의 협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어. 

'사투르니누스는 황제로 등극한 날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대들은 유능한 지휘관을 잃었다. 그리고 매우 비참한 황제를 만들었다.'

 

이런 혼란을 끝낸 사람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야. 그는 광대한 영토를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막시미아누스를 또 한 명의 황제로 추대하고 부황제 두 명,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도 고용(?)하지. 로마를 네 개의 영토로 나누어 각 한 지역을 맡아 다르리는 방법. 그러면서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들에 대한 장악력을 잃지 않았어. 정치적으로 뛰어난 감각을 가진 황제였어. 혼란을 멈춘 것 외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직을 은퇴하기도 했어. 이는 인간의 본성을 반하는 아주 어려운 결정이야. 자신과 함께 은퇴한 막시미아누스가 다시 권력을 잡자고 부추길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어.

'그는 자기가 살로나에서 직접 재배한 양배추를 막시미아누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막시미아누스도 그에게 권력 추구를 위해서 이 행복을 버리라고 촉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주 존경스럽고 따라 하기 힘든 위대한 행위란다.

 

기번은 기독교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어. 기번의 시대인 18세기는 아직 기독교의 시대 문화를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였을 텐데. 

아빠가 생각한 것처럼 초기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적 열망으로 세상에 이로움을 주려는 형태였지만, 전문적인 성직자들이 생기며 신도들에게 돈을 받고 기독교가 확장되자 이들은 권력에 눈이 멀기 시작하지. 

하느님은 유대인만을 위해 기적을 베풀었다는데 왜 유대인도 아닌 사람들이 기독교에 그토록 열광할까? 이런 종교도 사업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

'공포심은 신앙심과 이성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바로 공포심을 이용한 것이지.

'인간의 이성은 냉정한 중용을 포용하지만, 열정은 양극단 사이를 난폭한 속도로 오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런 열정도 기독교가 확장된 이유이기도 해.

'주교와 순교자들의 마음속에 교묘한 탈을 쓰고 스며든 권력욕이 작용한 결과로 그들의 신민의 수가 늘어나서 기독교 국가의 판도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과를 낳았어. 이것이 진정 하느님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만 보아도 많은 목사들은 형식적인 이웃 돕기만 하며 대부분의 돈을 대기업을 만들고 자신과 자신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지.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진정성을 가지는지 따지지도 않고 그저 '공포심'때문에 교회에 간다면 과연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가 천국일까?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제국을 통일한 후 번영을 누리지만 동시에 해가 지기 시작한단다. 로마를 위협한 세력의 힘을 낮추자니 야만족에 대항할 수 있는 힘도 함께 낮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란...

'통일된 것은 무엇이든지 분할하고 두드러진 것은 모두 낮추고 모든 능동적 세력을 겁내고 그리고 나약한 사람이 가장 잘 복종하리라고 기대하는 그와 같은 소극적 정책은 여러 황제들, 특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제도 곳곳에 침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황제는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귀족들과 군인들의 직급을 세분화해서 영예로 만족할 수 있도록 달래주는 정책을 사용해. 아빠는 우리 가정도 꾸리기 참 힘든데(민서, 명서가 너무나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아서...) 광활한 제국을 운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낄까?

 

'히브리인들은 이 아테네 철학자의 신학체계를 열심히 연구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아테네 철학자의 신학체계를 열심히 연구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원래 정신적으로 빈곤했음을 고백하는 데에 민족적인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뒤늦게 이집트의 스승들에게서 훔친 황금과 보석이 원래는 자신들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신성한 유산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했다. 예수가 탄생하기 100년 전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에게서 플라톤 학파의 문체와 사고방식을 분명히 모방한 철학적 논문이 나왔는데, 이 논문을 '솔로몬의 지혜'로 계시받은 값진 논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위의 글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의 교리는 플라톤 철학으로부터 접목되어 형태를 갖추고 완성이 되어 갔나 봐. 그렇다면 우리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해. 정말 신이 존재하는지. 정통 교회 파인 아타니시우스 주교와 아나시우스파는 큰 갈등을 겪었고 아나시우스파는 정통 교회파를 제거하려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그들은 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 영욕을 위해 살아갔어.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누구를 믿고 신에게 감사해야 할까?

 

'율리아누스의 치세 중에 이교도의 손에 죽어 유명해진 사람으로는 카파도키아의 게오르기오스를 들 수 있다. 그는 납품업자로서 군대에 돼지고기를 납품하여 큰돈을 번 사람으로서 어느 날 갑자기 아리우스 파에 심취하게 되었다. 콘스탄티우스가 아타나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직에서 몰아낸 후, 아리우스파인 카파도키아의 게오르기오스가 그 후임이 되었는데, 게오르기오스는 "그 성품과 교육에 의해서 박해의 기술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모든 종파를 "공평한 손으로 탄압"했고, 소금과 종이 및 장례 용구 등의 사업을 독점했으며, 시내의 부유한 이교 신전들을 약탈했다. 율리아누스가 제위를 물려받자 카파도키아의 게오르기오스는 처음에는 투옥되었다가 나중에는 분노한 이교도 폭도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호에 정통파와 아리우스파 기독교도들에 의해서 성자, 순교자,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명성은 십자군 시대에 온 유럽에 널리 전파되어 여러 세기가 지나는 동안에 그는 마침내 영국의 수호 성자인 성 조지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독재자가 자신을 신격화한 것이랑 다를 바가 없구나. 최소한 성자라면 한 줌의 흠이라도 용납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저 탐욕스러운 기업가를 성자로 올려놓은 것을 보니 다른 성자들도 별 볼일 없게 만드는구나. 그리고 아래 내용도 성직자는 기업인이라는 것은 이 시대도 현대도 달라진 것이 없네.

 

'성직자들은 개인적 이득의 추구가 저지되더라도, 신앙심과 애국심이라는 그럴듯한 미명 하에 교회의 재산을 늘리고 그들의 탐욕을 미화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콘스탄티우스 황제 사후 율리아누스 황제가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기독교의 성장이 방해되었고 따라서 지금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을 거야. 마루쿠스 아우렐리아 황제처럼 철학적 사유가 가능했던 이 황제는 로마가 문화의 황금기로 갈 기회를 신이 앗아갔구나. 로마의 세계에서 훌륭한 재능은 황제의 질투를 사고 결국 아까운 인재를 처형함으로써 로마 세계 멸망을 앞당겼다는 생각이 들어. 테오도시우스 장군 같은 사람이 대표적 인물이야. 때로는 너무 훌륭한 재능을 감추는 것도 필요한 재능이구나.

 

'역사가는 이런 고매한 고찰이 옳으냐 그르냐를 주제넘게 논하지 않고, 다만 경험에 의해서 입증할 수 있는 관찰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격변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격정에 따른 재앙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사건에 편애를 하기보다는 객관적 관찰을 서술하는 것이 공정하지만 자신의 의견 또한 귀중한 사료가 된다고 생각이 들어. 물론 해석하는 자유는 후손들에게 있지.

 

'기번은 이렇게 쓰고 있다. "가장 존경할 만한 주교들은, 무지한 촌사람들이 기독교의 품속에서 이교와의 약간의 유사성과 그 대상물을 발견한다면, 더욱 깊이 이교의 미신을 버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종교는 1세기도 못 되어 로마 제국을 최종적으로 정복했다. 그러나 정복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복당한 경쟁자들의 책략에 넘어갔다."'

 

기번이 이 책을 쓸 당시 종교에 대한 압박이 있었을 텐데 기독교를 이렇게 나쁘게 쓰는 것을 보면 종교의 폐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 책을 쓴 후에 후한이 없었는지 궁금하구나.

 

로마가 자신의 운명을 앞당기는 행위는 로마 제국을 충실히 지켜온 스틸리코를 사형에 처한 것이야. 이렇게 무능한 황제와 간악한 신하들은 늘 위대한 제국의 암적이 존재였지. 그를 죽인 순간 이제 로마 제국은 자신을 구제할 기회를 영영 버린 것이지.

 

아빠는 로마의 쇠망기뿐만 아니라 현재의 풍요로움에 젖어있는 세대가 아래와 같은 고통을 겪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이 되는구나.

'남녀를 불문하고 안일과 사치를 즐기도록 교육받았던 사람들은 이제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고, 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약간의 조잡한 음식물을 얻기 위해서 지금은 아무 쓸모없는 금은보화를 아낌없이 내다 팔았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 '

우리가 행복할 때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물은 끝이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단다.

 

이 책에서는 서로마 멸망으로 내용이 거의 마무리되고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메메트 2세에게 멸망당하는 내용으로 끝이 나. 옛말에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것이 실감 나고 개인에게도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 행복하면 할수록 더욱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불행한 일이 생겨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거야. 사실 개인과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아.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문화나 성향, 지향성 등에 따라 부강한 나라가 되기도 하고 약한 나라가 되기도 해. 대한민국의 모습은 오직 돈을 신으로 모시는 성향에서 상당히 위험하다고 볼 수 있어. 그럴수록 무엇이 진정한 삶의 자세를 만드는지 조용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단다.

 

기번의 편견 없는 기술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용감하다고 생각되고 역사가의 임무를 완전히 소화해 냈다고 생각해. 중심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힘들고, 나의 눈이 아닌 객관적 눈으로 시대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쉽게 생기지 않아. 우리 민서, 명서도 너희의 눈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2021.06.29.20:56... 민서는 다시 밤을 새우기 시작해서 자고 있고 명서는 용돈을 받기 위해 이 학습터를 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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