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투명 사회
글: 한병철
번역: 김태환
독서기간: 2022.09.14~2022.09.20
9월 16일(금)
민서, 명서야~~ 오늘은 한 번도 의심치 못했던 생각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현대 사회 통념과는 전혀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대단한 역발상적이고 다 읽을 즈음이면 아빠 지혜의 경계선이 좀 더 넓혀질 것 같아.
'투명성' 하면 속임이 없는 깨끗한 면을 강조하는 긍정적 관념이야. 하지만 저자는 이 투명성이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보이는 면에만 집착하는 폭력성을 보인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어. 현대는 전시 사회라는 거야. 보이는 것이 모두인 시대. 그것을 위해 성형을 하고 겉으로 제압하는 사회. 비밀과 숨김은 부정적 단어이지만 이런 부정성은 긍정성에서 방해로 작용해서 우리는 더 생각하게 되고 내공이 더 쌓이게 되지. 하지만 이것이 없다면 빠른 속도로 직진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매도하며 다름을 억압하지.
9월 18일(일)
명백사회도 투명사회와 일맥상통하고 있어. 정확하지 않고 흐릿한 점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우리 인간은 때로는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명확하지 않은 마음을 먹기도 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해. 명백 사회는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포르노와 같아.
포르노처럼 다 드러난 사회는 감흥도 신비함도 없어져. 왜냐하면 상상의 나래를 무참히 짓밟아버리기 때문이야.
'바르트는 사진의 두 가지 요소를 구분한다. 첫 번째 요소를 그는 "스투디움이라고 부른다. 탐구해야 할 광대한 정보들의 영역과 "시름없는 소망, 방향 없는 관심, 일관성 없는 기호-좋다/싫다-의 영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요소인 "푼크툼"은 "스투디움"을 깨뜨린다. 그것은 호감이 아니라 어떤 상처, 격한 감동, 당혹감을 낳는다.... 푼크툼은 연속적인 정보들의 행렬을 중단시킨다. 그것은 균열, 단층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푼크툼은 극도의 강렬함과 응축의 장소이며, 그 속에는 뭔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내재한다.'
가속 사회도 투명성을 특징으로 장애를 거치지 않고 전진만 한단다. 즉 천천히 생각하는 사색을 앗아가 버리지.
'무언가의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른 것의 빛 속에서, 회상을 통해 나타난다.'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면 죽은 사회일 뿐이야.
네트워크 상에서 영혼 없는 친밀함, 과잉 정보로 더 피곤한 삶을 사는 현대인은 그러고 보면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구나.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를 보면서 아빠가 늘 염려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야.
9월 19일(월)
'사람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파놉티콘적 시선에 자기를 내맡긴다.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수감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여기에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
아빠도 SNS를 바라보며 위와 같은 생각을 많이 했어. 왜 사람들은 무료로 자신에 대한 감시를 허락할까? 이런 모습이 정당화되는 시대는 상업적인 요소와는 떼려야 뗄 수가 없어. 이런 디지털 시대에서 더 큰 문제는 아래에 나와 있어.
'우리는 디지털 매체에 취해 있다. 하지만 이 도취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제대로 평가할 능력은 없다. 이러한 맹목과 마비가 오늘날 위기의 본질을 이룬다.'
저자는 즉흥적이고 쾌락적인 효율성은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고 하고 있어.
'지각하는 것, 보는 것의 더 깊은 행복은 효율성의 부재에 있다. 사물을 착취하지 않고 그에 머물러 있는 오랜 시선에서 깊은 행복이 나오는 것이다.'
정보 과잉은 결정에 더 유효한 작용을 하지 않아. 그런데도 이는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며 우리를 우울증과 우유부단과 같은 문제 속으로 끌어들인단다. 정보 과잉은 오히려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게 가장 본질적인 문제야.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치적 선거도 디지털로 할 시간이 머지않았어. 저자는 이런 투표마저도 상업적인 즉흥적 결정과 다를 바 없어진다며 우려하고 있어. '저항'은 표면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이지만 사실은 더 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란 것을 우리 민서, 명서가 잘 깨닫기를 바라.
9월 20일(화)
스스로 착취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의 완벽한 환경이 갖추어 지고 있다고 해. 사람들은 이제 개인적인 일들까지 속속들이 공개를 하며 생산자이자 소비자 역할을 하며 감시를 자처하고 있어. 그것이 자신을 뽐내는 일이라 생각하지. 정작 자신을 감시하는 눈들에게 먹잇감이 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결국, 과다해진 긍정 사회의 그늘에서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황폐해질 정도로 피로를 느끼고 있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긍정의 생각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모두 밝혀야 하는 것을 강요받고 있어.
사유를 하고 결정을 위해 잔고를 하며 그러면서 진정한 인생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성'은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우리 민서, 명서가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2022.09.20.(화)20:14... 민서는 저녁 식사 후 자기 방에 명서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핸드폰 보면서 ㅠㅠ)...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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