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글: 이종범
독서기간: 2024.01.01 ~ 2024.01.07
민서, 명서야~~ 오늘은 아빠가 성서를 오래전에 읽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어.
아빠는 전에도 말했지만 어릴 적 성당을 다녔어. 그래서 지금 만나는 가장 오래된 친구들도 그 시절에 만났던 성당 친구들이야. 그래서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단다.
너희들도 성당에 다닌다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어.
Chapter 1 예수의 전설
우리가 크리스마스면 늘 듣는 탄생 이야기.
동방 박사 세 사람이 황금, 유황, 몰약을 들고 별이 이끄는 마구간으로 가서 경배를 올린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해.
일단 목동이 알아차렸다고 하는데 겨울에는 추워서 목동이 야영을 할 수 없다고 해.
신약성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어.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신화같은 존재야. 그래서 유대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다윗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지.
예수는 인간이었어. 그런데 이를 신으로 격상시킨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이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쥐려던 자들이야.
요즘 종교가 타락했다고 하지만 이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일어난 일이었어.
예수는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했지만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오직 자신이 보호받기만을 바라.
이를 이렇게 만든 건 당연히 성직자들이야.
그들 또한 약한 인간의 마음을 이용해 신자들의 위에 올라서서 돈을 삥 뜯으려 하는 것이지.
아빠는 지금껏 어느 성직자라도 누구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이게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신의 계시를 대리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예수는 사랑을 말하지 않았어. 몸소 실천했지.
과연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성직자나 교인이 얼마나 될까?
어제 신년을 맞아 엄마랑 근처 절에 다녀왔는데 역시 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전등에 소원을 비는 의식을 하는데 큰 건 50만원 작은 건 20만 원 하는 식이야.
과연 부처님께서 이렇게 돈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돈 많은 자들을 더 많이 극락세계로 보내라고 가르침을 주었을까?
성직자도 문제고 신자들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가르침의 본질은 관심없고 잿밥에만 몰두하기 때문이야. 차라리 아빠는 통속적인 인간으로 사는 게 낫다는 주의야.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했어.
그리고 제자들과 식사도 했어. <요한복음>은 가장 늦게 씌워졌고 21장은 익명의 다른 사람이 썼어.
신약을 쓴 주체는 그 시대의 신앙공동체 의견에 따라 써졌다고 하는구나.
바울은 예수가 하지도 않은 말인 물질적인 목과 영적인 몸에 대해 이야기해.
예수를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 바울은 어떻게 단호한 어조로 영혼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신앙이 예수를 신격화한 거야.
Chapter 2 예수의 가족
유대인들은 가부장적인 제도로 인한 영향으로 예수는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불렀어.
하지만 시대의 눈치를 보는 기독교는 하느님 아버지는 성이 없다고 했어.
또한 유대인들은 신을 인격적 존재로 여기지 않았지만 기독교의 하느님은 한없는 자비로 사랑을 베루는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어. 이런 자비를 뒤로 하고 예수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걸어.
양차 세계대전 이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갔어.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인 유대인마저도 엄청난 숫자가 죽어갈 때 신은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인간이 겪기 힘든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신이 침묵하고 있는 건 없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지.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알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신이 말했다느니 성경에 이미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다는 둥 억지 주장을 내세웠어. 신은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갈 때조차 침묵했어.
따라서 기독교는 신의 침묵이 신의 본질임을 내세웠어.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우리가 과학의 발전으로 신의 위치로 향하며 바로 우리가 신을 죽인 거라고 했어.
기독교는 몰락하고 있어.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권력, 부에 대한 집착이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탐욕에 차 있으니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예수가 자신을 낳아준 마리아를 대하는 방식이야.
성경에는 예수와 마리아가 접촉하는 장면이 3번 나와.
예수가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없어져서 요셉과 마리아가 3일을 헤맨 끝에 마리아가 예수에게 너를 걱정하며 찾았다고 하자 예수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는가? 하고 대답해.
두 번째는 예수가 30살이 된 무렵 혼인 잔치에서 일을 돕던 마리아가 예수에게 술이 떨어졌다고 하자 예수는 '당신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여자여'라고 대답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슬퍼하고 있던 마리아를 바라보며 예수는 '여인아. 봐라. 당신의 아들이다.라고 이야기 해.
이는 아무리 자신이 신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낳아준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은 상식적이지 않아.
이는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한 <요한복음>이 인간인 마리아와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명시한 것이라고 해.
그리고 마리아는 성경에서 그다지 중요 인물이 아님에도 현재는 신격화되어 있단다.
이는 중심에서 점점 밀려나는 가톨릭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기도 해.
엄연한 성경을 기준으로 한다면 마리아는 중요한 위치가 아니었고 예수가 죽은 뒤 요한이 모셨다는 이야기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아.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마리아보다 더 존재감이 없어.
생물학적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예수가 12살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성경에서 단역조차 맡지 못했어.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의 조상이 다윗임을 내세우며 예수가 유대인의 전설적인 왕의 자손임을 내세워.
하지만 이는 모순이야. 생물학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막달레나 마리아는 인척이 아니지만 비중이 그나마 높아. 예수가 7가지 악귀를 쫓아내고 부활하고 제일 처음 본 사람이 그녀였어. 막달레나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이는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591년 한 강론에서 선언해 버렸기 때문에 오해가 있었던 거야.
이스카리옷 유다. 그는 예수를 은화 30개를 받고 팔아넘겨. 그리고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자 죄책감에 은화를 성전에 뿌리고 목을 매고 자살을 했어. 이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그는 세상을 배신한 자라는 것 또 하나는 유다는 이미 예수가 세상을 대신해 죽음을 이루기 위해 짜인 각본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결과로 원인을 유추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야. 그는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쳤다는 안도감을 가졌을까? 하늘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오늘날 기독교의 원흉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가.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실천의 신앙을 강조했어. 즉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삶 말이야.
그런데 교회의 성직자들은 이 '실천'이 싫었어. 이는 가난하게 살기가 싫었던 것이지.
그래서 신자들에게 신앙만을 강조하며 실천보다는 개인의 이익만을 빌게 하면서 진정한 가치를 버린 것이지.
아빠도 성당을 오랜 시간 다녔지만 성직자의 의아한 언행을 보며 실망했던 적이 있었어.
그렇지만 그들은 절대로 깨닫지 못할 거야. 그들에게는 예수의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니까. 사업가니까.
형제여. 누가 자기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나? 어떤 형제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육신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라는 말만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실천이 없는 믿음 자체는 죽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믿음만 있고 나는 실천이 있소." 그렇다면 나에게 실천 없는 당신의 믿음을 보여 달라.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다.(아고보서 2, 14-20)
Chapter 3 예수의 교회
과연 예수의 교회는 누가 세웠을까?
사실 예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가르침을 주었어. 그런데 오늘날은 으리으리한 건물과 정부 관료제를 뺨치는 조직이 기독교의 이미지란다.
가톨릭 교회의 교황의 연대도 정확하지 않아.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5대 교회인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로마의 교회 가운데 하나였어.
교회는 예수가 세우지 않았어. 그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에클레시아, 곧 모임만이 있었어.
예수는 끼니를 늘 여러 집을 다니면서 얻어먹었어. 과연, 현재 이런 신앙의 가치를 가진 성직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지 의문스럽구나.
예수를 숭배하기 시작한 사람은 바울이었어. 그는 예수를 한 번도 만나지도 가르침도 받은 적이 없었어. 심지어 그는 기독교도들을 박해했던 사람이었어.
예수가 단 한 번도 제자들에게 숭배를 요구한 적이 없음에도 바울은 오늘날과 같이 관료적 집단을 만들고 세를 확장해 사도들의 예루살렘 모임마저도 집어삼켰어.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주를 대신하기보다는 교주를 닮아야 한다. 곧 'in persona Christi'나 in persona Buddhae'가 아니라 'in imago Christi'나 in imago Buddhae'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이해에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곧 예수의 교회인가 아니면 성직자의 교회인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성부, 성자, 성력의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도 이미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한 믿음에 대한 방식이었어.
삼위일체론은 합의를 보지 못한 종교계에 대해 정치권력이 결정해 준 거야. 우리가 믿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예수에 대한 호기심은 상대적으로 많아.
하지만 예수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몰라. 성경에도 역사적 자료는 무척 부족하고 공관복음을 비롯한 다른 정경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어 의심스럽단다.
현재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천의 믿음이 아닌 기복신앙을 강조하고 있다는 거야. 게다가 신자들은 자의적인 객관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성직자의 말은 곧 신의 말로 받아들이고 있어.
성직자들은 자신을 신의 대체자 이미지로 굳히며 절대적 권력을 가지려 시도해 왔어.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하며 그나마 지나친 종교적 색채를 벗어나고 있어.
물론 성경을 의심하는 자체가 불경이라며 극심히 반대하는 성직자들이 있지.
성경 자체가 인간이 쓴 내용인데 한치의 오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가진 권력에 금이 갈까 두려움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어.
이 책이 종교에 관한 내용이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어 관련된 여러 현상이나 이론, 방침 등이 본질을 벗어나 자의적 해석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는구나.
아빠도 사람이기에 색안경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지만 이를 위해 꾸준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싶구나.
우리 민서, 명서도 너희들의 편견을 벗어던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삶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24.01.07.일.12:28.... 민서는 소희 만나러 간다며, 돈이 없다면 방 청소는 나중에 하겠다면 용돈 가불을 요구하고 명서는 거실에서 졸업 선물로 키보드를 사달라고 할 때.... 우당 타당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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