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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서울대 인문고전 25-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베버)

삶의 기쁨 독서 이야기

by Jinnyboy 2015. 10. 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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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글: 윤원근

그림: 김혜은

독서기간: 2015.10.19~10.21

 

민서, 명서야, 오늘의 책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야. 책 이름이 좀 길지? 이 책의 대략적인 요점을 짧게 말하면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정신이 자본주의 정신을 발전시켰다는 거야. 중세 때는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나쁜 일로 보았단다.

먼저 막스 베버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1864년 4월 2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일곱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어. 두 살 때 중병에 걸려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왜소했어. 그 때문인지 몰라도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 위대한 인물들의 대부분은 늘 독서하는 습관이 있다고 아빠가 많이 이야기했지?  막스 베버의 아버지는 중앙에서 활동하는 정치가였기에 그의 집엔 거물급 정치가들과 학자들이 자주 방문했어. 그래서 이따금 그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곤 해서 지적으로 매우 조숙했어. 학교의 가르침은 너무 수준이 낮았고 어울릴 만한 아이들도 없었어. 그래서 규율을 무시하는 등, 말썽을 좀 많이 피웠지. 우리 명서도 지금 유치원에서 말썽꾸러기로 낙인이 찍혔는데 유치원의 가르침이 너무 낮아서 그러니?... ㅎㅎㅎ 명서야, 그래도 이 아빠는 늘 항상 널 뒤에서 응원하고 네 편이란다. 막스 베버는 18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했어.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완벽히 해냈다고 해. 이런 그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왔는데 1883년 군대에 복무하기 위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이모부 내외와 함께 지낼 때야. 이모부는 평등이란 이념을 지닌 분이었는데 권위로 짓누르던 아버지와는 달리 그를 지적인 동료로 대해 주셨어. 그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 이모부를 닮으려 했지. 이모는 어머니와 같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셨지만 자신의 종교적 가치를 매우 적극적으로 강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 달랐어. 이걸 보면서 그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해.

1884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베를린 대학에 등록해서 《중세 무역회사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와 강사 자격을 얻었지. 그는 학비를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의존해야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서 미친 듯이 연구활동에 매달려 일종의 도피를 꿈꿨어. 1895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가 되어 아버지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어. 이 대학에서 그는 《국민 국가와 경제정책》이라는 강연을 해서 학계와 정치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지. 1896년엔 처음 입학했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경제학부 교수로 초빙되었지. 그는 곧 그곳으로 이사했고 그의 집엔 훌륭한 지식인과 과학자들이 몰려들었어. 그러던 중 불행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 막스 베버의 집에 부모님이 오셨는데 아버지가 그만 가보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조금만 더 있다 가자고 하자 아버지가 가부장적 태도로 자기의 뜻을 거역하는 거에 대해 질책을 하자 그는 그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고 해. 그래서 아버지는 그때의 충격으로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가부장적이 안되려고 노력은 하는데 너희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너희들과 자유롭게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데 말이야... 막스 베버는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고 5년이 지나도록 회복할 수 없었어. 정말 미워하는 아버지이지만 존경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충격이 컸을 거야. 휴식을 위해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회복될 듯하다가도 다시 재발하곤 했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결과 1903년에 지적인 힘을 회복할 수 있었지. 병에서 회복된 후 미국을 여행하면서 자본주의 형성에 프로테스탄트가 한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 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1905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출판되었어. 신경쇠약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했고 사교생활도 최소한으로 한정했어. 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전쟁에 자원하기도 했어. 하지만 곧 그만두었어. 독일 지도자들이 참으로 어리석었기 때문이야. 그는 독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가 죽은 얼마 뒤 히틀러가 나왔지. 이 아빠가 이야기하는 현재 한국을 위해서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하지만 히틀러 같은 인물은 권력을 잡지 말아야 하겠지. 그는 세계사의 절망이야. 막스 베버 역시 당시의 민족주의적 열정에 감염되어 있었지만 무분별한 국수주의자는 아니었어. 다른 민족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이들을 차별하는 자들과 싸웠단다.

1920년 6월, 고열이 나는 병을 앓았는데 단순한 독감인 줄 알았지만 폐렴이었지. 그리고 며칠 후, 죽고 말았단다.

 

16세기, 경제적으로 발달한 지역과 도시들이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였어. 프로테스탄트는 조상에게서 많은 부를 물려받아 경제적 생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들 중에 경영자, 자본가, 고급 노동자가 많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어. 그렇다면 왜 경제적으로 발전한 지역들이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였을까? 이 부분은 '영웅주의'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자신의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행복과 쾌락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으는 태도를 말하지. 칼뱅주의는 16세기에는 스위스의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네덜란드 대부분에서, 17세기에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잉글랜드 전체에서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던 상업 귀족들은 칼뱅주의의 엄격한 정책을 힘들어했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부유한 자본가 계급들이 청교도주의의 감독정책을 거부하기는커녕 열렬히 받아들이고 옹호했다는 사실이야.

칼뱅주의는 청빈한 생활로 정직, 근면, 성실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신은 미리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지정했는데 이 결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다고 했어.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지를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위에서 말한 청빈한 생활과 신용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성공했다면, 이것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표시가 된다는 거야. 민서, 명서야 어떠니? 자신이 이미 천국에 갈지 안 갈지가 결정되었다면 아예 포기하고 악하게 사는 사람도 나올 거 같은데.... 이런 칼뱅주의는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현재에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본주의 시장에 따라 경제가 운영되고 있단다.

그럼, 자본주의 정신이란 건 무엇일까?  자본주의의 기본은 신용이 좋은 정직한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기고 있지. '이상적인 인간'은 자본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삶의 목적 자체로 삼는 인간이야. 우리는 이 윤리적 특징을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부를 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미덕인 동시에 유능함의 표현이야.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직업 소명 개념을 만들었지만 이를 칼뱅이 더욱 확장시키고 이를 현세적 금욕주의라고 해. 이는 위에서 말한 정직과 성실로 자본을 증가시키면서 검소하고 겸손으로 생활하는 거야. 사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야. 천민자본주의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주의지. 칼뱅주의의 중요한 자본주의 정신은 쏙 빼먹고 말이야. 현재 대한민국의 재벌들 중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훌륭한 사상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필요한 개념만 쏙 빼서 이용한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거야. 지금도 그렇지만 너희들의 세상이 더욱 나빠질까 봐 두렵구나. 민서 명서야.... 어떤 사상을 이용할 때는 그 사상의 중요한 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한단다....

 

2015.10.23. 14:45.... 엄마, 민서는 낮잠 자고 명서는 심심해하고 있을 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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